이지원 감독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당신은 누구와 닮았나요?
현실에 없었으면 하는 바람
아동학대 정면으로 다뤄
감독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아역·주연배우 열연 호평

한 여자가 있다. 살인미수 전과자. 성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다 '죄'를 지었다. 남의 차를 닦고 남의 등을 쓰다듬으며 악착같이 돈을 버는 여자는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은 엄마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부고를 전해듣고 이제는 더 미워할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상처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를 만났다. 9살짜리 아이는 추운 겨울날 멍이 시퍼렇게 든 다리를 드러내고 서 있다.

여자는 소주잔을 들이키고 소녀는 허겁지겁 안주를 먹는다.

"아줌마 아냐. 미쓰백이라고 불러."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은 처절한 현실을 미화 없이 드러낸다. 아동학대를 중심으로 허술한 사회 안전망을, 지독한 사회 편견을 보여준다.

▲ <미쓰백> 스틸컷.

미쓰백(배우 한지민)은 아이 지은(배우 김시아)이 자꾸만 신경 쓰이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는 지은이도 마찬가지다. 미쓰백은 전과자라는 벽에 가로막히고 지은이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어른(경찰)들의 안일한 대처에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집은 집이 아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빠(배우 백수장)와 동거녀(배우 권소현)는 커다란 팔을 휘두른다.

언제나 좁은 욕실에 웅크려 있는 지은이. 매일 작은 창 하나에 의지해 바깥세상을 향해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렇게 지은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미쓰백이 오고 가는 것을 홀로 보았겠지.

미쓰백은 자신 같은 지은이가 신경 쓰이지만 떠날 채비를 한다. 줄곧 자신을 믿어준 형사 장섭(배우 이희준)의 만류도 소용없다.

▲ 게임 중독에 빠진 아빠와 동거녀의 폭력에 시달리는 한 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온몸에 멍든 아이는 살기 위해 집을 탈출한다. /<미쓰백> 스틸컷

떠나는 날, 미쓰백은 지은이를 찾지만 아파트 초인종 소리만 요란히 울릴 뿐이다.

하지만 둘은 서로 부르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은, 그것이 과거이든 현재이든 상관없이 둘을 연대케 했다.

그 시간 지은이는 살려고 욕실을 탈출하고 미쓰백은 자신을 기다렸을 지은이를 향해 뛰어간다.

영화는 아주 실감 나서 가슴이 아프다. 과거 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전과자까지 된 미쓰백의 인생이 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현실이고 지은이의 학대는 뉴스만 틀면 보도되는 기사처럼 아주 사실적이다.

영화에서 아동 학대 관련 뉴스가 아주 짧게 나오고 장섭이 전화로 아동보호센터를 알아보는 사소한 장면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은, 그런 뉴스만 나오면 보기 싫다며 텔레비전 전원을 끄는 우리가 보이고 여전히 시설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 시대 사회복지 시스템에 더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아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오히려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가해자에 분통이 터지고, 안전하리라 생각했던 곳에서 아이가 또 한 번 사라졌을 때 도대체 사회시스템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은 허탈하다.

그래서 영화는 미쓰백이라는 여성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구원해야 하는 사회 밑바닥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 <미쓰백> 스틸컷.

<미쓰백>의 각본을 직접 쓴 이지원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을 아이들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며 꼭 이야기를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미쓰백>은 개봉 전 영화 <아저씨>의 아류가 아니냐, 제목이 가볍고 상투적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연출과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다. 또 여성 감독의 입봉작,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배우 한지민이 '제38회 영평상 여우주연상'에 이어 '제4회 런던 동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집을 탈출해야 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말하고 있을 것이다. '미쓰리', '미쓰김'이 필요하다.

영화는 창원, 김해, 진주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한다.

▲ 그 아이를 보면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자꾸 외면하는 미쓰백. 결국 그녀는 아이를 찾아 나선다. 미쓰백 또한 지옥같은 유년시절을 보내다 성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살인미수 전과자가 됐다. /<미쓰백> 스틸컷

'준희야 미안해' 하늘에선 평안하길

영화 <미쓰백>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실화다.

지난해 4월 친부와 동거녀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고준희(당시 5세) 양 사건. 가해자는 시신을 군산 야산에 암매장했다. 또 이들은 생모가 준희 양 행방을 물을 것을 우려해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영화에서도 지은이 아빠와 동거녀는 미쓰백에게 '유기'를 덮어씌우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다. 또 자신들이 학대했다는 증거를 없애려 지은이를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영화에만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편 지난 6월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아동학대 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준희 양 친부와 동거녀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10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아동학대 치사와 사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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