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이례적으로 평양순안국제공항 도착에서부터 대통령 일행을 환영하는 북한의 생생한 모습들이 생방송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북한주민의 생활상도 간간이 언론에 비쳤다.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신축건물 공사도 한창 진행되고, 대동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신은 어린이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일전에 '평양 거리의 어린이들이 남한의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무척 작았지만, 당시 유행하던 만화캐릭터가 붙어 있는 새 운동화를 신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부모가 아무리 배곯아도 자식에게 좋은 것 입히고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필자의 운동화에 대한 추억도 소환됐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운동화의 브랜드는 없었다. 시장에서 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운동화가 최고였다. 손수레에 있었건 좌판에 있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캐릭터 운동화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티(ET)'가 그려진 새 운동화를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것 같다. 사실 누님들이 무얼 신고 다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필자는 그렇게 새 운동화를 받았다.

중년에 접어든 지금도 새 신발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물며 그때는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는 다른 아이들도 필자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다 보니 새 신발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새 운동화를 신고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실내화도 없었던 시절 마룻바닥을 맨발로 걸으면서도 운동화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런데 하교 때 필자의 운동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른 신발장에도 보이지 않았다. 울고불고 할 새도 없이 맨발로 무작정 집으로 향했다. 2km 남짓한 거리였다. 어머니에게 혼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사라진 운동화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운동화에 대한 추억은 그리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그리 넉넉지는 않아도 아이들 운동화는 꼭 유행하는 브랜드, 또 한두 켤레 여유 있게 사주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부모가 그랬고, 필자의 어머니도 그랬고, 필자가 가진 아이에 대한 마음은 시대는 달라도 같은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허성무 창원시장의 운동화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청 내에서의 행사는 물론이고 외부행사, 삶의 현장을 가리지 않고 양복에도 항상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겼던지 어느 기자분이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운동화를 신어야 활동력이 좋고, 또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뛰자고 했던 그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스스로 다짐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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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시청에 있었다가 현장에 있었다가 소통에 동분서주한다. 체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저 운동화가 색이 바래고 닳으면 그분의 어머니께서도 새 신발을 사주실까'라는 발칙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둘째 아이에게 얼마 전에 사줬던 운동화가 조금 낡았다. 아이가 운동화를 슬리퍼처럼 끌고 다녀서 신발 뒤쪽이 구겨졌는데 복원이 안 된다. 저녁에 시간 내서 운동화 하나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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