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간 합의서 작성 때
피해자 치료·병원비
청구 책임소재 명시해야

'건강보험 구상권 청구'에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사고 합의' 때 보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경남에 거주하는 ㄱ 씨는 지난해 교통사고를 내 가해자가 됐다. ㄱ 씨는 피해자 ㄴ 씨 치료·병원비를 부담해야 했다. 우선 책임보험으로 진행하다 한도를 소진했다.

ㄴ 씨 퇴원 시점에서 남은 치료·병원비는 3000만 원이었다. 이에 ㄱ·ㄴ 씨는 합의를 진행했고 △남은 치료·병원비 3000만 원 △정신적 피해 등의 명목 3500만 원, 이렇게 총 6500만 원에 모두 마무리하기로 했다. 둘은 제3자나 법률 자문 없이 '합의서'를 작성했다. '총액 6500만 원'을 기재하고, '이후 서로 간 책임을 묻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을 담았다. ㄱ 씨는 합의금을 현금으로 줬다.

ㄱ 씨는 이것으로 모든 비용 부담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구상권 청구'를 받았다. 즉, '치료·병원비 3000만 원'에 대한 부분으로, 피해자 ㄴ 씨가 이 부분을 건강보험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ㄱ 씨는 합의 때 이 금액까지 포함했던 터였다. 따라서 당연히 ㄴ 씨 부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 ㄴ 씨의 치료비를 지급했고, 합의서에 치료·병원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ㄱ 씨는 이러한 상황을 ㄴ 씨에게 알렸지만, 현재 제대로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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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가해자·피해자 간 합의서를 작성했다면, 구상권 청구 부분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담은 원칙적으로 가해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가해자·피해자 쪽에서 서로 억울해하는 사례가 많다. 그래도 요즘은 개인 간 합의서를 작성할 때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 측은 이러한 분쟁이 늘어나자 관련 소송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이를 걸러주는 장치가 없어 개인 책임으로 돌아가는 현실이다.

건강보험공단 측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나갈 때 양측에 자세한 설명을 한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우선 피해자를 찾아가 설명한다. 그리고 가해자 연락처를 확보해 다시 한번 설명한다"며 "그런데 자세히 듣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ㄱ 씨는 합의 이전까지 건강보험공단 측으로부터 어떠한 연락이나 설명, 문서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ㄱ 씨는 "보통 시민 중에 건강보험 구상권 부분을 합의서에 명확히 담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당할 수 있는 얘기"라며 "나는 가해자 쪽에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구상권 피해자'가 된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법무법인 믿음' 김태형 변호사는 "합의 때는 법률구조공단 등에서 제공하는 양식대로 작성할 것을 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ㄱ 씨 같은 경우 합의서를 서투르게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치료비는 우선적으로 합의금에 포함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라며 "세세한 사항까지 알지 못하지만, 법률적 자문을 받아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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