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로 섬이오, 육지 위 외딴섬"
경사진 비탈길의 달동네
지금도 재산권 행사 제약
"인자 쫌 풀어주이소"염원
수정동 중앙시장 일대
진주비빔밥·냉면집 원조

주변에 바다가 아예 없는 섬이 있다.

진주시 옥봉동 '보리땅먼당'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섬이라고 한다.

"여기가 바로 '섬' 아이요. 진주시내와는 뚝 떨어진 섬…."

무슨 말일까?

"전에는 저짜(저쪽) 강 건너 섭천이나 야시골이 여기보다 몬했지. 그런데 지금은 거가 오히려 낫소, 여보다. 도시가스도 들어오고. 여긴 안 들어와!"

주민들 불만도, 푸념도 10년 전 그대로다.

그래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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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 옥봉동 보리땅먼당 오르는 깎아지른 골목. 하늘로 오르는 듯하다. /이일균 기자

◇보리땅먼당

보리땅먼당이라는 구수한 이름 역시 지금도 그대로 쓰이는 옥봉동 달동네.

'먼당'은 '만당' '만다' 하는 사투리로 경상도 어느 곳에서든 '언덕배기의 넓은 곳'이라는 뜻이다.

'보리땅'의 뜻에 대해서는 설이 두 가지다. 옛날 경로당을 뜻했던 '보로당'이 이 마을에 있었다는 것 하나와 '사람들 보릿고개 넘기듯 못 살았던 동네'가 또 하나다.

하늘로 올라갈 듯한 깎아지른 골목 모양새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땀 뻘뻘 흘리며 고갯마루에 올랐다.

말티고개가 보였다.

지금이야 길이 여럿 있지만, 옛날에는 도동 넘어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10년 전과 달리 고갯마루에 소방도로가 떡하니 들어섰다.

그때보다 사람 찾기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물 한잔 주는 주민들 인심은 여전하다.

"서서 그라지 말고 들어오소!"

쉼터 문을 두드리고 쭈뼛쭈뼛하자, 떨어진 말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히고, 물도 한 잔 주시고….

"뭐하는 양반인지?"

신문사 기자라고 했더니 윤상규(69) 어르신이 작정을 했다.

마을 쉼터에서 만난 보리땅먼당 주민들.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염원이다. /이일균 기자

"제발 신문에 쫌 내주이소."

"여기가 옛날부터 교육청 땅 아임미꺼. 제발 쫌 불하를 해주이소. 뭘 더 짓지도 몬하고, 재산권 행사도 몬하고…."

"등기를 떼면 여기 546번지가 전부 한 덩어리로 나와요. 60집이 전부 다. 처음에 무허가로 이 집 저 집 짓다보니까 무허가촌이 됐고 지금은 건물권만 주는 상탠데, 이기 제발 쫌 풀렸으먼 좋겠슴미더."

10년 전 주민들 호소가 생각났다. 그때 기사를 찾았다.

"우리가 왜 문화재를 마다하겠습니꺼?"

가야시대의 고분군이 '경상남도 기념물 1호'로 지정된 '금산공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못살았던 옥봉동을 묶어난 데 아입니꺼. 여기 때문에 옥봉동 대부분에 10층 이상 건물을 못 짓지예. 또 문화재 주변도로 옆으로는 슬라브건물 대신에 기와집을 지야 되고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들 염원은 한결같다.

"인자 풀어주이소 제발!"

이는 옥봉동 출신 백정으로 차별 철폐 '형평운동'을 했던 이학찬 선생의 유지이기도 하다.

진주 중앙시장 안 평범한 장터 모습. 하지만 130년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이일균 기자

◇진주비빔밥 원조

보리땅먼당에서는 수정동 중앙시장 일대가 훤히 보인다.

10년 전 기사에서 진주 명물 '비빔밥'과 '진주냉면' 원조로 소개된 곳이다.

당시 리치과 리영달 원장은 진주비빔밥과 냉면을 말하는 대목에서 흥분했다. 입맛까지 다셨다.

"몇몇 식당에서 계승을 한다지만 그게 영, 옛날 맛이 아니에요. 일단 진주비빔밥 맛은 철마다 다른 나물이 결정했어요. 반드시 갓 올라오는 새순이 돼야제. 냉면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야. 해물 육수에 육포전을 얇게 썰어 올려야지."

지금 진주에서 그 맛을 내세우는 곳이 중앙시장 일대 천황식당과 제일식당, 천수식당이다. 냉면집으로는 이현동에 '하연옥'이 있다.

리영달 원장은 당시 진주비빔밥과 진주냉면의 원류를 지금 옥봉동과 맞닿은 수정동거리와 옛 중앙시장 나무전거리로 꼽았다.

진주의 비빔밥집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

소설 <토지> 속 1910년대 진주 옥봉동과 수정동 어디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 비빔밥집 이야기다.

2006년 10월 9일 자

"쪼깐이집은 서울식 비빔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겨울이 되면서부터 국밥을 찾는 손님이 있어 국밥도 겸해 하는데 방안에 걸어놓은 솥에서 서리는 김과 온기로 방안 공기가 후끈하다."

그 역사를 전했던 리영달 원장은 85세의 고령인 지금도 치과 진료를 계속한다.

지금도 취미인 사진촬영을 위해 새벽시장에 나간다.

살아있는 역사다.

보리땅먼당에서 내려와 중앙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등록시기로 봤을 때, 경남 최장수 전통시장이다.

진주 중앙시장번영회 기록으로 이곳 상설시장의 시작은 '1884년 상무사 결성'이다. 134년의 역사로 경남 전통시장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비빔밥, 냉면의 원조일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의 원조인 셈이다.

긴 세월 동안 중앙시장은 인근 장대동과 옥봉동, 봉래동까지 범위를 넓혔다 좁혔다 반복했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장대동 죽세공품전과 싸전(쌀가게), 신발전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

중앙시장 역시 역사다.

2006년 10월 1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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