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와 만난 선율 '치고이너바이젠'
쿵후고수 대결 다룬 작품 코미디·액션 조화 돋보여
주인공-대모 추격 삽입곡 사라사테의 '집시의 노래'바이올린의 환상적 기교

으레 등장하는 성룡의 영화들을 보며 추석을 맞이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소룡과 성룡을 거쳐 이연걸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었고 이제는 견자단이 그 역할을 하는 듯 한데 판다도 한몫을 하는 듯하다. 이렇듯 중국의 전통무술 쿵후는 영화를 통해 그리고 무협소설 등을 통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자메이카의 가수 칼 더글라스는 노골적으로 쿵후 파이팅이라 노래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현란한 손기술과 발차기 대신 총알이 스크린에 난무하기 시작한다. 한 명의 적을 쓰러트리는 데 1초면 충분한데 반해 쿵후는 한참의 기합소리가 필요하다. 초반에 적에게 쥐어 터지는 것은 기본, 신나게 얻어 맞은 후에야 각성하고 잠재되어 있는 진짜 실력이 발휘된다. 좀체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적은 이제 아까와는 다르게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제압 당하고 마는데 그때의 통렬함이란. 이렇듯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주던 쿵후 영화들이 극장에서 사라지는 듯 했으나 최근 판다가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2004년 개봉한 영화 <쿵푸 허슬>, 영화 <소림 축구>로 시작해 이 영화로 정통 쿵후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다. 주인공은 코믹연기의 대가 '주성치', 그는 <소림 축구>에 이어 <쿵푸 허슬>에서도 메가폰을 잡고 자신의 최고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 주인공 싱과 돼지촌 여주인의 추격전.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삽입곡 스페인 작곡가 파블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과 잘 어울린다. /캡처

◇주성치가 만든 코믹영화의 진수

1940년대의 중국 상하이. 난세를 틈타 어둠의 세력을 평정한 도끼파가 밤의 세상을 접수한 곳. 어느날 도끼파의 일원이 되고픈 어리숙한 건달 '싱(주성치)'은 친구 '물삼겹'과 함께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돼지촌을 접수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도끼파의 일원이 부상을 당하게 되고 이에 도끼파들은 돼지촌으로 모여 들어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찐빵가게 주인과 양복점 주인, 짐꾼 등 돼지촌에서 은거하던 강호의 고수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톡톡히 망신을 당한 도끼파는 가야금 연주 소리에 공력을 실어 공격하는 탄금신공의 고수들을 보내 복수를 노린다. 하지만 그곳엔 더욱 강력한 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돼지촌 주인부부였던 것이다. 이에 급기야 도끼파의 두목은 '싱'을 시켜 정신이 이상해져 강호를 떠난 전설 속의 고수인 '야수'를 정신병원에서 꺼내 온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싱'은 그에게 덤벼 드나 '야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돼지촌의 대모가 혼신의 공력을 실어 내지른 사자후에도 끄떡없는 한마디로 악마를 깨우고 만 것이다. 하지만 '싱'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신공이 있었으니 바로 '여래신장'이다. 어릴 적 우연히 속아서 산 쿵후관련 책이 진짜였으며 그는 그동안 그것을 연마해 왔던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몸 속에 있던 힘을 각성하게 된 '싱'은 위기에 빠진 돼지촌을 구하기 위해 일전을 치르게 되는데. 과연 그는 두꺼비처럼 변신해 합마공을 구사하는 '야수'로부터 돼지촌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 <쿵푸 허슬>은 코미디와 액션이 적절히 잘 조화된 영화임에 틀림없다. 탄금신공 고수들과 돼지촌 고수들의 대결, '싱'과 도끼파 일원들의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혈투 장면 등은 환상적이다. 몇 번을 다시 봐도 큰 웃음을 선사하는 또 한 장면이 있으니 돼지촌의 대모를 몰래 공격하려는 '싱'과 '물삼겹'이 벌이는 해프닝이다. 둘의 능청스런 연기를 보다 보면 누구라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결국 둘의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대모가 엄청난 속도로 '싱'을 쫓는다. 주인공 '싱'은 사력을 다해 도망을 가는데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되고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스페인의 작곡가 '파블로 사라사테(Pablo Sarasate·1844~1908)'의 '치고이너바이젠'이다.

▲ 주인공 싱과 돼지촌 여주인의 추격전.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삽입곡 스페인 작곡가 파블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과 잘 어울린다. /캡처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 돋보여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 사라사테는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8세 때 이미 공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신동이었다. 조국인 스페인을 떠나 12세 때부터 파리로 유학해 달콤한 음색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특성을 흡수하여 더욱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한 그는 화려한 기교와 우아함으로 청중들을 매료시킨다. '집시의 노래'라는 뜻의 그의 대표작 '치고이너바이젠'은 그 도입부가 너무도 유명하여 좌절 장면에 많이 쓰이는데 누구나가 들어본 선율일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집시풍의 이국적인 선율 또한 너무나 매력적인데 헝가리 춤 차르다슈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곡이니만큼 그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애수 가득한 선율에 이어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강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 빠른 춤곡이 전개된다.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곡이다 보니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겐 도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수많은 연주자들의 다양한 음반들이 존재한다. 35세에 요절한 바이올리니스트 '마이클 래빈'의 음반이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과 함께한 카라얀 키드 '안네 소피 무터'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듯하나 '야사 하이페츠'의 이름을 빼 놓고 이 곡을 논할 수는 없다. 데뷔와 함께 많은 연주자들을 연주회장에서 강단으로 내몬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1901년 제정 러시아의 리투아니아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템포 조절, 한 음 한 음에 부여하는 긴장감으로 표현되는 연주자이니 어쩌면 '치고이너바이젠'이라는 곡에 특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19세기가 파가니니의 세기였다면 20세기는 하이페츠의 세기라고 일컬을 정도로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 그의 위상은 놀라운 위치이며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본 바이올린의 명인 '크라이슬러'가 "이제 우리는 바이올린을 부셔버려야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 그가 연주하는 '치고이너바이젠'을 들어 보면 사람의 연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기교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빠르고 정확한 연주에도 전혀 동요함 없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그의 연주는 차갑다는 오해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음색은 하이페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것이며 녹음으로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음에도 대단한 연주임에는 틀림없다.

▲ 주인공 싱과 돼지촌 여주인의 추격전.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삽입곡 스페인 작곡가 파블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과 잘 어울린다. /캡처

1940년대의 상하이, 서구 열강들의 패권싸움이 치열했던 시절, 영화 <색계>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 <색계>가 구국을 위한 미인계라면 영화 <쿵푸 허슬>은 중국 정통 무예를 통한 외부적 침략에 대한 대항이라 의미부여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 '싱'은 크나큰 고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가끔씩 우리에게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시련들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해 준다는 식상한 이야기이다. 주는 교훈은 뻔하지만 정작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우리의 대처는 저마다 다르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러한 상식적인 가르침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있는가? '또 그 얘기'하며 지나치는 이들이 많기에 영화는 우리에게 뻔한 훈계를 다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 이제 모두 도저히 넘어서질 못할 듯한 벽에 부딪혔을 때 가만히 손바닥을 펼치고 한껏 기운을 모아 보자. 그러곤 일갈!!!!

"여래신장!!!!!!" /심광도 시민기자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주인공 싱과 돼지촌 여주인의 추격전. 관능적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삽입곡 스페인 작곡가 파블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과 잘 어울린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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