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만연한 이주노동자 혐오 정서
근로조건 개선하고 체류 대책 강구해야

출근하자마자 편집국으로 전화가 왔다. 젊은 여성은 거침없이 다그쳤다. '산재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기획보도를 문제 삼았다. 우리 인권이 중요하듯이 외국인 인권도 중요하지 않으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런 이야기였다. "왜 그런 보도를 하느냐. 외국인 강간 피해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인도네시아 단체나 교수는 자기 나라 노동자 인권이나 지키지 왜 내정 간섭하느냐. 그것도 후진국이. 우리 인권이 우선이다."

제주도에 집단입국한 예멘인들 기사에 달린 흥분한 댓글을 유심히 봐왔지만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이주노동자 산재발생률은 한국인보다 2~6배 높은 걸로 추정된다. 정확한 통계도 없을 정도로 사각지대다.

고용허가제로 일하든 미등록이든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산업·건설·어업·농업 말단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건강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든다면 모든 이에게 안전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일 테다.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를 혐오하거나 두려운 존재로 여기는 이들이 말하는 외국인 흉악범죄가 더 많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국책연구기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6월에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2017)>을 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외국인 범죄도 늘어났다. 그러나 외국인이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편견이다.

내국인 '범죄 인구 10만 명당 검거인원지수'가 외국인보다 훨씬 높다. 2016년 내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3495명)은 외국인(1735명)보다 배나 많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줄곧 내국인 지수가 2배 이상 높았다. 그런데도 왜 난민, 이주노동자들을 혐오할까. 일자리가 줄어들고 먹고살기 어려워서, 미디어를 통한 외국인 혐오범죄를 많이 접해서 그런 것일까.

자의든 타의든 이 땅을 떠나 '디아스포라' 삶과 굴곡진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이 말이다. 강간 등 범죄 때문에 외국인이 싫다는 주장은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던 유언비어와 다를바 없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말에 수많은 사람이 학살을 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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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가고, 간도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일제 강제징용당해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이들. 그리고 풍찬노숙했던 독립운동가들. 현대사는 어떤가. 한국전쟁 때 수많은 실향민, 유학갔다 간첩 낙인이 찍힌 이들, 독일 광부와 간호사들, 수출된 수많은 입양아…, 그리고 먹고살려고 떠난 이민자. 이런저런 이유로 이역만리에 사는 재외동포는 743만 명에 이른다. 국내 체류 외국인 230만 명보다 훨씬 많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어디에 있건 인권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가치를 복잡한 숫자로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듯이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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