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도시 김해서 드러난 안전 허점"
외벽 시커멓고 차량은 뼈대만
외국인 5가구 등 모여 살던 곳
장기체류·의료혜택 보장 절실

"하필이면 다문화도시 김해에서 어처구니없는 외국인 화재 사건이 발생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김해시에 이주민을 보살필 전담팀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22일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김해시 서상동 4층짜리 원룸건물 화재현장을 둘러봤다. 화재가 난 1층 주차장에 불에 타 뼈대만 남은 차량 7대와 오토바이 1대는 당시 화재현장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건물 이름만 희미하게 보일 뿐 외벽 전체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1층 주차장에는 물이 새고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시민이 하나둘 모여 "외국인이 전국 두 번째로 많은 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후진적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느냐"며 혀를 찼다. 이들은 "외국인 지원에 대한 특별한 방안을 마련해야만 김해가 다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5가구가 살던 원룸 건물에는 외국인이 5가구이며, 빈집 1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9가구는 모두 셋방이었다.

1층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차주로 보이는 한 여성은 불에 탄 차 안에서 타다 남은 가방과 서류를 꺼내 재를 털면서 망연자실했다. 그는 "화재 당시 너무 급한 나머지 위층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휴대전화를 떨어트렸는데 혹시 휴대전화가 있는지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 김해시 서상동 4층 원룸건물 화재 현장. 외벽 전체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차량은 불에 타 뼈대만 남아 있는 정도다. /박석곤 기자

원룸 화재는 바로 옆 1층 슬레이트집으로도 옮겨붙었다. 골목 안 단층집은 이날 화재로 불에 탄 외벽 불똥이 지붕을 덮어 폭삭 내려앉은 상태였다. 이웃들은 "불행 중 다행이다. 집 안에는 가스통 2개가 있었는데 화재 당시 가스통까지 터졌더라면 엄청난 인명사고가 났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진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민들은 이 집에는 중국인 2명이 살고 있었는데 화재 이후 거처를 옮겼다고 전했다.

원룸 건물 옆에서 가게를 하는 ㄱ(78)씨는 "펑하는 소리가 나서 나왔더니 순식간에 불이 타올라 속수무책이었다. 연기가 집안까지 가득해 이틀간 방에서 잠을 못 자고 이제서야 겨우 방 청소를 마쳤다"고 했다. 그는 "불이 붙으면 어떻게 손조차 쓸 수 없는 건물 외벽 단열재가 문제였다. 가스차단기를 내렸기에 망정이지 자칫 멈칫했더라면 우리 집까지 전소했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해이주민의 집 대표 슈베디 씨는 "이번 외국인 화재사망사고와 관련, 외국인 신분인 고려인에 대해서는 국내에 장기체류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건강보험 혜택이나 어린이집 교육권 등을 보장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례비나 치료비 등의 법적 보호도 못 받는 실정이다.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해시는 22일 긴급회의를 개최해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시는 긴급복지 지원법에 따라 1인당 병원치료비를 1회 300만 원씩 최대 6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생계비도 117만 원씩 최대 6회에 걸쳐 지원한다. 원룸 건물은 건물만 화재보험에 가입해 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부모와 사망한 딸(14세)과 아들(4세), 중상을 입은 아들(12세), 엄마 언니와 그의 아들(13세) 등 7명이 원룸에 살고 있었다. 현재 중상을 입은 아이 2명은 위중하다. 고국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자 돈을 벌려 한국에 왔다가 한순간에 소중한 가족을 잃게 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김해시 공무원들은 피해자들을 돕고자 자발적 모금운동도 펼친다.

숨진 남매의 빈소는 김해중앙병원에 마련됐다. 유족은 김해지역 한 교회 도움을 받아 23일 김해추모공원에서 남매의 장례를 치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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