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 인권운동가 김형률…많은 이들 기억하길"
1인칭 시점 '원폭 피해 2세 삶' 그린 다큐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리틀보이 12725>(김지곤 감독)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 2세 김형률(1970 ~ 2005)의 힘겨웠지만 치열했던 삶을 쫓아가는 작품입니다.

부산에 살던 김형률은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라면서 폐의 70%가 기능을 잃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었지요. 그러다가 원폭 피해 유전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이었다고 깨닫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원폭 피해자 인권운동과 반핵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지요.

영화는 굉장히 시(詩)적입니다. 음침하고 기괴하며, 따뜻하고 슬픈 다음 긴 여운이 남습니다. 영상과 이미지로 구성된 장편 서사시라고 할까요. 김지곤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 언어가 작품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김형률 생전 모습. /오마이뉴스

"김형률 선생님을 잘 모르고 지내다가 2015년 부산민주공원 소식지에서 서거 10주기 추모 행사 중 기념식수 사진을 보고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 분을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살아 계실 때 제법 주목을 받긴 했지만, 돌아가시고 나서는 정작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로 했죠. 선생님에 대한 책이 이미 두 권이 나와 있고 다큐멘터리도 여러 편이 나와 있지만, 저는 새롭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리틀보이(Little boy)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8월 6일, 미국령 북마리아나 제도 티니언섬에서 출발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코드명입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원폭 유전병으로 몸이 왜소했던 김형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12725는 무엇일까요? 1만 2725일. 김형률이 살았던 나날들입니다.

영화는 1인칭 시점입니다.

"저는 선생님 살아계실 때 만나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남긴 일기나 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았더라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디를 가보고 싶으셨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김 감독의 말대로 영상은 김형률의 시점으로 티니언 섬의 원자폭탄 보관지를 향하고, 히로시마의 잔잔히 일렁이는 강물을 응시합니다.

영화 <리틀보이 12725>를 연출한 김지곤(맨 오른쪽) 감독과 제작진, 그리고 출연자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한 모습. /홍현승

이 영화는 합천과도 관계가 큽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리죠.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을 당하거나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히로시마로 갔다가 원폭 피해를 본 분들이 특히 많이 살고 계십니다. 합천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가 벌어지고,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건립된 건 모두 김형률의 노력 덕분입니다.

"원폭 2세 피해자 식사 자리에 같이 갔었는데, 이분들이 모여서 이렇게 밥 한 그릇 같이 나눠 먹게 된 출발점도 결국 김형률 선생님이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 자신을 포함해서 단 2명으로 시작하셨거든요. 사회 운동을 떠나서 이렇게 숨겨져 있던 원폭 2세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또, 영화에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이노우에 리에(33) 작가가 부산에 아직 남아 있는 김형률의 방에서 그의 어머니 이곡지(79) 씨와 아버지 김봉대(81) 씨의 도움으로 13주기 추모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이 아주 길게 나옵니다. 

리에 작가는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3세대이기도 하죠.

여기에 역시 창원에서 활동하는 밴드 엉클밥의 노래 '리틀보이'가 배경음악으로 쓰였습니다. 이 곡 역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소재로 만든 것입니다.

하여 여러모로 경남과도 인연이 많은 영화네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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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보이 12725>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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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보이 12725>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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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보이 12725>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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