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수 상승하는 여행상품은 뭘까
여유·즉흥 아이템이 곧 맞춤형 관광

"해 잡으러 갑시다~ 어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우리는 쌍계사를 한 바퀴 돌고 시쳇말로 핫(hot)한 카페에서 차도 마셨기에 노곤한 몸을 누일 생각으로 하동군 악양면 숙소에 다다랐다. 그때 갑자기 숙소 사장이 바쁜 걸음으로 '해 잡으러 가자!'고 외쳤다. 우리는 덩달아 바빠져 그의 느닷없는 제안이 좋은지 싫은지 분간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해 잡으러 가자'는 말이 가을 분위기와 더불어 가슴팍으로 깊이 꽂혔다고나 할까. 짐만 숙소에 옮겨 놓고 그의 차에 올라타 시골 마을 좁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차는 산꼭대기를 향하고 있었다. 산 기운이 커질수록 해의 기운은 약해졌고, 그와 우리는 해를 못 잡게 될까 조바심을 냈다. 그제서야 우리는 멋진 일몰을 보게 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는 더 속도를 냈고, 차를 멈추고 언덕배기로 다가간 바로 그 순간 장관이 펼쳐졌다.

"이야~~~ 너무 멋지다~~~". 해는 아직 지리산 자락에 걸쳐져 가을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해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설명하는 지리산, 섬진강, 슬로시티 하동, 숨겨진 비경, 구재봉 명칭은 뒷전이고, 목가적 풍경과 황홀한 일몰 앞에서 우리는 카메라 셔텨만 수없이 눌러댔다. "사진 그만 찍고 눈으로 풍경 좀 보세요"라는 그의 핀잔에도 아랑곳 없이.

추억지수나 감성지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생각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두 배로 상승하는 듯하다.

저녁 식사는 하동에서 유명하다는 닭갈비를 선택했다. 간장 양념을 한 담백한 맛이었다. 재첩국만 유명했던 게 아니었다. 숙소(SM Jeong 와이너리)로 돌아올 즈음 우리는 대봉감으로 만든 와인을 맛볼 참이었다. 그러나 "아까 쌍계사 밑에서 동동주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는 우리의 말에 '와인 계획'은 바로 무산됐다. 그가 데려간 곳은 공지영 작가가 쓴 <지리산 행복학교>에 등장하는 '형제봉 주막'이었다. 앉을 자리가 몇 없는 '형제봉 주막'엔 많은 이들이 풀어놓고 간 이야기 보따리와 추억이 묻어났다. 주인장의 기타 연주와 노래, 동동주, 악양의 별, 이야기들이 우리가 살아온 삶과 버무려졌다. "기타 연주와 노래는 그날 기분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날밤 주인장의 연주와 노래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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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가 본 악양 평사리 들판, 전혀 몰랐던 문암송과 조씨고가, 때마침 구경 갔던 최참판댁에서 만난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났네>(극단 큰들)는 1박2일 하동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숨겨진 마을 풍경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전국 시군마다 체류형 관광객 늘리기에 한창이다. 하동의 하룻밤은 재방문 욕구가 커지는 아이템이었다. 이런 아이템을 강화하려면 감성과 여유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고, 짜인 것보다 '즉흥적'인 것이 더 효과적이다. 즉흥적인 것이 곧 행정에서 말하는 '고객 맞춤형 관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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