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 회복' 목표 삼은 학자들
우리 교육도 '전인교육'이 되기를

통계청에서 공표한 2017년도 우리나라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 6000억 원으로 국방예산 40조 3000억 원의 46.2%를 차지했다. 사교육 참여학생 중 월평균 사교육비로 50만 원 이상 지출한 학생 비중이 18.4%로 가장 높았었다. 한때 35조 원에 가까운 수치로 국방예산을 넘으며 망국병으로까지 불렸던 사교육시장은 우리나라의 학벌주의, 일류대주의가 낳은 참으로 가슴 아픈 비극의 산물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교육의 목표를 '무소위행(無所爲行)'에 두었다. 인간이 꾀함이 없는 행동, 순수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됨을 교육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사심(私心)을 가진 헛된 욕망은 자신과 이웃을 해하는 비극을 낳을 뿐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수십 년간 고수하며,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 역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죽기 직전의 병든 사회인지 오늘,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사교육 광풍을 일으켜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이 사회의 수준이 과연 어떤 수준인지,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학교가 지옥으로 변한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그 근본원인을 파헤치지 않고서는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汚名)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보면 '자왈 학이시습지(子曰 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란 말이 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

이 단순한 말 속에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지 않나한다. 누구보다도 인간본성(人間本性)의 회복을 주장했던 공자였기에, 그가 본성에 내재된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고 보니, 남을 이기고 좋은 학벌을 얻는 수단에 불과했던 지겨운 교육이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근세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의 대표자인 카를 야스퍼스(K. Jaspers·1883~1969·독일)는 이러한 본성회복의 상태를 포괄자(包括者·das Umgreifonde)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포괄자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우리 인간의 참된 본성 속에는 '나와 남이 없는, 대상을 구분 지을 수 없는 속성'이 있다는 뜻이다.

바로, 거대한 학벌주의, 무한경쟁의 원인이 나와 남을 구분 짓는 개아성(個我性)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나는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보다 잘나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개아성이 가진 비극의 속성이다. 요즘은 대학들도 돈이 되지 않는 순수학문에 해당하는 학과는 폐지하는 추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한낱 기계의 부속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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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통계강의를 위해 울산의 어느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어린 학생들의 순전한 눈망울, 천진스레 장난치던 모습들이 지금도 내 가슴을 아프게 울린다.

하루속히 우리의 교육제도를 인격도야(人格陶冶)가 포함된 전인교육(全人敎育)으로 바꾸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이 천박하고 병든 문화를,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 건강한 문화로 바꿀 때, 더 이상 사교육 열풍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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