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조각비엔날레, 정체성·책임감 아쉽다"
주제 삼은 '불각의 균형'"제대로 부각 안돼"지적
영구설치에도 비판 많아 '미적 가치관 고착'우려

지난달 4일 '불각(不刻)의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개막한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가 17억 원의 예산을 들여 41일간 여정을 끝내고 14일 막을 내렸다. 용지공원(실외전)과 성산아트홀(실내전)을 중심으로 본전시가 열렸고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창원역사민속관 등에서 특별전이 개최됐다. 국내외 작가 60여 명(팀)이 조각, 회화, 미디어 아트 등 220여 점을 선보였다.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주관한 창원문화재단은 용지공원에 조성한 '유어예 마당'에 누구나 만지고 놀 수 있는 조각품을 내세워 참여형 비엔날레를 지향했고 '파격'이라는 이름을 단 실내전 역시 조각의 확대 전시로 꾸몄다. 또 2년 전 비엔날레보다 학술심포지엄, 작가와의 대화 등 부대 프로그램을 확대해 전시를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 지난달 4일 개막한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가 14일 막을 내렸다. 용지공원 유어예 마당에 설치된 야외 작품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 /창원문화재단

윤범모(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은 창원 출신 조각가의 철학을 사유하며 시민의 참여로 이뤄내는 비엔날레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무엇보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주제를 벗어난 전시" =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의 큰 주제는 '불각의 균형'이었다. 김종영(1915∼1982)과 문신(1923~1995) 선생을 창원 조각 역사의 중요한 맥으로 잡고 김종영의 불각과 문신의 조화, 균형 정신을 결합했다. 윤 감독은 이러한 조형성과 더불어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담은 조각의 영역을 확장해 입체예술의 다양한 양태와 담론을 엮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영과 문신의 작품들은 작은 전시장을 각자 채웠을 뿐 올해 조각비엔날레에서 이들의 정신을 깊고 세밀하게 볼 수 없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보여주면서도 지역에 작품을 영구 설치해야 하고 조각 도시라는 창원의 전통까지 고려해야 했던 창원문화재단은 큰 주제로 '불각의 균형'을 따왔을 뿐 소주제와 특별전에서 이를 연결하지 않았다.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내보이는 작품 역시 큰 주제에 따라 작가 섭외, 큐레이팅, 영구설치라는 단계를 밟지 않았다.

지난 13일 창원의 한 카페에서 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열렸던 창원조각비엔날레 자유 비평 자리에서 노순천 작가는 "성산아트홀 내 김종영 섹션을 보고 놀랐다. 몇 해 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봤던 전시보다 허술했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이자 정신인데, 귀하게 대접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에 맞는 다른 작품도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성산아트홀의 '파격'전도 이름과 걸맞지 않았다는 평이 나온다.

'고구마', '씨앗', '머리카락' 등을 이용한 작품을 재료의 측면에서 파격이라고 내세웠는데, 이는 진부한 접근일뿐만 아니라 작품도 낯설거나 새롭지 않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한 매체에서 "'파격'을 내세웠지만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정체성을 갉아먹는다"고 혹평했다.

◇"영구설치는 일방적 미술 교육" =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시민 등이 모여 올해 창원조각비엔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이날, 많은 이들이 함께 고개를 끄덕인 지점은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무엇인가'였다.

김나리 독립큐레이터는 "국내 유일 조각비엔날레라는 특수성이 있다. 이에 대한 책임감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조각 작품을 내보이며 조각의 미래와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조각은 창원에서 중요한 브랜드다"고 강조했다.

영구 설치에 대한 우려도 컸다.

도시 곳곳에 조각 공원을 조성하려는 창원시에 대해 변공규 작가는 "앞으로 비엔날레가 도시 개발과 맞물려 진행될 것 같다. 창원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용지공원에 조각이 세워졌으니, 이제는 창원중앙역 주변, 창원SM타운이 들어설 자리가 후보지이지 않겠느냐"며 작품 설치 중심 비엔날레를 꼬집었다. 이성륙 작가도 "예술판 토목 건설이다"고 비판했다.

최수환 작가는 도시의 작품들이 앞으로 시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말했다. 최 작가는 "우리가 매일 보는 작품이 될 테다. 어쩌면 더 좋은 환경을 누릴 권리를 빼앗긴 셈이다. 또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조각품이 가장 좋은 작품이구나'를 받아들이며 살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적 가치관을 전하는 교육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 작가는 "10년 동안 지역 주민과 함께 준비해, 작품을 남길 때도 시민과 협의해 결정하는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지닌 공공성에 대한 책임감을 지적하며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지역에서 일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창원문화재단은 내달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 최종보고회'를 열고 관람객 만족도 조사 결과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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