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행정 기득권에 요원해진 지역 분권
지역을 위해 일할 인재 발굴도 어려워져

수도권 일극 체제하에서 지역 분권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악순환의 연속으로 소위 '지방'은 늪이 되고 있다. 지방이라는 늪에 빠진 지역민들은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일찍이 "지역분권의 가장 큰 적은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중앙정부 관료"라는 정의가 통용된지 오래지만 변한 건 없다. 중앙정부 관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역분권의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정치권력 구조를 논하기에는 벅차기도 하고, 그 거대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답답함이 엄습해 온다.

경남 도내 낙후된 군 지역에서 4∼5선 국회의원까지 지내신(?) 원로 정치인들이 서울 강남 자택에 앉아 "좁은 땅덩어리에 분권은 무슨 얼어 죽을"이라는 말을 되뇌는 걸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들에게 '시골'은 적당하게 생색내기용으로 도로나 뚫어주고 다리 하나 놔주면 되는 곳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지역의 자산은 끊임없이 수도권으로 흘러들어가고, 지역의 힘으로 권력을 얻은 이들조차도 자신들 기득권이 작동하는 서울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고자 급급할 뿐이다.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자신을 뽑아준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

인재도 없다. 이미 늪이 된 지방에서 인재론을 둘러싸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토론을 벌이는 것조차 무의미해 보인다.

'분권 없는 공간에 인재 없고, 인재 없으니 분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순환고리를 만들면서 우리를 늪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고 보니 지역에서 외치는 '분권'이 형해화된 지도 오래다.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분권'이 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외부 자극에 배타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곤 한다.

허성무 창원시장이 '천하의 인재를 모시고 싶다'고 의욕적 일성을 내질렀음에도 아직 창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적임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전문가가 시골에 내려오지 않으려 한다'는 말부터 '우리 동네에는 인재가 없나? 왜 꼭 서울에서만 인재를 찾으려 하느냐'는 등의 웅성거림이 무성하다.

이 지점에서 발견되는 '서울 VS 지방'이라는 대립구도에 기반한 유사분권론은 지양해야 할 듯싶다. '지역의 일은 지역에서 처리한다'는 것과 '지역의 일을 지역 사람만 해먹겠다'는 데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코드 인사'도 마찬가지다. 선출직의 코드인사, 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코드'에 속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자기 밥그릇 챙기는 유사분권론자들이라면 지역에 희망은 없다.

물론 '천하의 인재를 모신다'고 한들 그것이 중앙의 적폐 이식으로 이어질 위험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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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출자·출연기관장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고 지역을 가꾸는 일이 참 어려워 보인다. 분권의 지연이 지방을 늪으로 만들었다고 말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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