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때 숲에서 동생과 함께 노래 공연
서툴고 낯설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

함양에서는 해마다 '산삼 축제'가 열린다. 산삼 축제를 하는 상림공원 안에 '힐링 숲'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지난 9월, 그곳에서 열리는 숲속 음악회에 동생 수연이와 내가 노래 손님으로 초대를 받았다. 지역에서 삶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을 초대한다고 했다. 숲에서 공연한다는 말에 선뜻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공연을 하려면 우리를 소개할 이름이 필요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수연이에게 "우리 서와콩 할래?" 하고 장난을 쳤다. 내가 별명으로 쓰는 이름이 '서와'이다. 글 서(書) 자를 써서 '글과 함께'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수연이를 '콩'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나보다 훨씬 크지만 어릴 때는 콩처럼 조그마했기 때문이다. 어린 수연이는 "누나는 콩으로 만든 건 다 좋아하지? 두부랑 청국장도 좋아하고" 하면서 콩이라 불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수연이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사실 농담으로 한 말이라 "진짜 괜찮아?" 하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공연 사이에 들어가 노래 몇 곡을 부른 일은 있지만 이렇게 긴 공연을 둘이서 채우기는 처음이다. 저녁마다 수연이랑 공연 준비를 했다. 어떤 노래를 부를지, 순서는 어떻게 할지, 여기서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하나하나 고민하며 함께 정했다. 또 수연이가 만든 노래 가운데 가사를 바꾸기로 한 노래가 있었다. 원래 쓴 가사가 있었지만,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서 감동이 덜했기 때문이다. 가사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밭일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가사가 머리 옆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가사를 다 썼다. '낭만 농부'라고 노래 제목을 붙였다.

그렇게 준비한 공연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와서 숲에서 공연할 수 있을까? 우리 마음도 컴컴한 하늘처럼 시무룩해졌다. 더구나 어젯밤 지네에게 물린 손이 호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젬베를 쳐야 하는데 말이다. 아픈 걸 꾸욱 참고 젬베를 쳐 보아도 손바닥이 부어올라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정성껏 준비한 공연인 만큼 속상함도 컸다.

숲에 조그만 천막을 쳐서 비 가림을 했다. 다행히 리허설하는데 비가 그쳤다. 그 뒤로 비가 왔다 갔다 했지만, 보슬보슬 기분 좋게 맞을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손이었다. 결국, 젬베가 없으면 안 되는 노래 두 곡만 연주하기로 했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공연을 시작하는데 악보에 적힌 '웃자'라는 글씨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집중하다 보면 표정이 심각해져서 서로에게 "웃고 있어?" 하고 말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만큼 아직 무대가 서툴고 낯설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 삶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좋다. 떨리는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이야기가 내 삶에 담기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숲에서 공연하는 게 좋았는지 수연이가 "우리 다음에는 밭에서 공연해 보자" 한다. "하긴, 밭에서 농사만 지으란 법은 없지. 그러자!" 밭에서 공연을 열 날을 상상하니 벌써 신이 난다. 수연이와 지은 '낭만 농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오늘은 발을 돌려서 작은 숲으로 가요. 나뭇잎과 구름이 마주치는 곳에서 내가 하고픈 노랠 만들어가요. 낭만이 별건가요. 멈춰 서면 보이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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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가 살아갈 작은 숲을 아름답게 일구고 싶다. 그곳에 내가 기댈 나무를 심고, 추억을 쌓고, 낭만을 일구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작은 숲에 발길을 멈추는 벗이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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