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증언자 나왔는데…조사의지 의문
유족·단체, 위원회 비판…"공식 아닌 사전답사"해명

1979년 부마항쟁 때 마산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 유치준 씨에 대한 현장조사가 취소됐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공식적인 조사가 아닌 사전답사'였다고 해명했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검찰사무관(조사관)은 16일 오후 3시 남부희 창원대 교수와 면담 자리에서 현장조사는 법에 따른 공식조사가 아닌 사전 작업 차 현장을 둘러보려 한 것인데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애초 진상규명위는 이날 유 씨가 숨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용마동창회관(옛 대림회관, 마산시 산호2동 316-4 새한자동차 앞 도로변) 인근을 살펴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하루 전날 이를 연기한다고 통보하며 유족·관련단체 등을 면담하기로 했다.

▲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심사보상과장(왼쪽)이 16일 오후 창원대학교에서 부마항쟁 당시 취재기자였던 남부희 씨(창원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정책자문관)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현장조사가 진행되지 않자 근본적으로 조사 의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 진압과 유 씨 사망 관련성이 입증되면 부마항쟁의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또 국가폭력에 대한 정부의 은폐 가능성을 밝혀내야 할 필요도 있다.

유 씨의 아들 성국(57) 씨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현장조사에 기대를 했었다. 기념사업회는 유 씨가 숨진 장소 인근에서 시위를 이끈 참가자 2명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력의 배치 위치나 진압 방법 등을 기억하고 있어, 유 씨의 사망과 관련한 조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다.

성국 씨도 제대로 된 조사로 부친의 명예회복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날 현장조사가 진행되지 않자 성국 씨는 "조사관이 현장을 살피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유족이나 관련단체를 만나는 것보다 진상조사가 더 중요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남 교수도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새로운 증언자 2명이 나타난 것 아니냐. 지금까지 진상규명위는 증거와 증언자가 없다고 했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진상규명위 조사관은 "법에 따른 조사기간은 지난해 4월 끝났다. 조사가 재개될 때를 대비해 현장을 모르니 주변을 둘러보는 정도로 사전답사를 계획했던 것이고 법 개정이 되면 당연히 조사는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규명위 한 위원은 "조사관이 바뀌었는데, 현장조사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관심이 높아지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진상규명위가 공식 자료로 채택한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자료집>, 고 유치준 씨의 제적 등본, 검사 지휘로 작성된 검시사건부 등을 근거로 유치준 씨가 경찰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다고 보고 있다. <자료집>에는 남 교수가 1979년 기자 시절 입수한 마산경찰서 자료에 따라 '정황으로 판단, 타살체가 분명'이라고 기록돼 있다.

지난 7월 채택된 '부마민주항쟁 진상보고서'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유 씨를 부마항쟁 사망자로 판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 보고서는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있으면 추가 심의를 거쳐 수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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