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비극 떠올리게 하는 실화 소재
리더 선택에 시민의 삶·운명 바뀔수도

지난 주말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멀티플렉스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장악한 국내 상영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영화들이기에 어떤 영화라도 괜찮았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본 영화가 <쿠르스크>였다.

'2000년 8월 바렌해에서 폭파로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 K-141 쿠르스크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선원들은 침몰된 잠수함에서 고군분투하고 가족들은 고압적인 정부에 맞서 진실을 요구한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레아 세이두·콜린 퍼스 등 쟁쟁한 유럽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영화제 안내책자에 실린 짧은 소개글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될지는 모르겠다. 배급사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 정부에서는 몰라도 현 정부에서는 개봉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정치적 해석을 한 까닭은,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실화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침몰한 세월호다.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영화 <다이빙벨> 상영이 빌미가 돼 정부 지원예산이 반 토막 나고, 이에 반발한 영화인들의 보이콧 등으로 휘청거렸다. 4년 만에 정상화 원년을 선포한 올해 영화제에서 <쿠르스크>를 상영한 의미가 가볍지 않아 보인다.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는 참사 발생 후 논란이 됐던 러시아 정부와 해군의 부적절한 대처와 구조 지연, 그로 말미암은 생존자 가족의 고통을 정확한 고증에 의해 극화했다고 한다. 영화 주제가 무겁기도 했지만,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관객 사이에서 감도는 숙연함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영화를 보며 또 한가지 주목한 건 지도자(리더)의 중요성이다. 러시아 해군은 낡은 구조선을 동원해 구조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다른 나라 지원 요청에 늑장을 부린다. 군사기밀과 국가 자존심을 앞세워 외국 원조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영국해군이 투입됐을 땐 선원들이 전원 사망한 뒤였다.

뇌과학자 정재승은 최근 펴낸 <열두 발자국>에서 '지금,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좋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 그는 신중함이라는 모호한 신화에 사로잡혀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된 선택이 틀렸는데도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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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7기 출범 100일이 지났다. 단체장들은 4년 동안 수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한 선택은 시민의 삶과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그들은 신중함과 추진력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하동 갈사만산업단지 분양대금 반환청구 소송 패소, 창원 진해글로벌테마파크 조성 무산, 창녕 낙동강 워터플렉스 조성 백지화 등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결정을 미루면서 얼마나 많은 예산 낭비와 사회적 갈등을 남겼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는 충분하다. 그런데도 '지역 숙원사업'이라고 포장하며 실패한 공약을 포기하지 못하는 단체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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