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제도 뜯어고쳐야 '블랑카 눈물'막는다
안전교육 때 의사소통 배려 없어…지역별 교육 등 보완책 도입을
산재 나도 사업주는 벌금 그쳐…예방에 비용 쓰도록 유도해야
한국서 사고 당해도 돌아가면 끝…적극적인 후속 치료 지원 필요
고용허가제, 노동권 침해 야기…사업장 이전 자유 보장 시급

노동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려면 제대로 된 안전교육, 위험한 곳에서 일하지 않도록 사업장 이전의 자유 등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연구하는 단체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서 장기 체류에 따른 이민 정책을 펴야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원, 이철승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소장에게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를 줄이고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해결책을 물었다.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추련 활동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제대로 된 안전 교육 필요 =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는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안전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회사 안전교육 현장에 가보면 이주노동자가 맨 앞줄에 앉아있다. 한국인과 같이 교육을 받는데 따로 통역이 없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의 다수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작은 사업장에서는 일일이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지역별 이주노동자 교육이라든지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분기별로 6시간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정기적인 교육 이외에 작업에 배치될 때 작업에 따라 이주노동자에게 특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소통의 어려움은 건강검진, 작업환경 측정, 산재 처리 과정 등에서도 발생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몸에 이상이 있어도 대부분 한국어로 돼 있기에 안내를 받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는 알기 어렵다. 납중독 유소견(D1) 진단을 받고도 이를 알지 못하고 출국한 인도네시아 수트리스노 씨 사례가 이 같은 문제에 따른 것이다. 그는 몇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활동가는 "지난해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사업장에서 전체 노동자의 10%는 이주노동자였다. 그런데, 당시 사업장에서 다치고 상담이 필요한 이주노동자에게 한글로만 된 설문조사를 했다. 사업장에서 괜찮다고 쓰라고 해서 괜찮다고 쓴 이주노동자는 실제로는 괜찮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추련은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정보를 제공하고자 지난 2011년, 2012년, 2016년 세차례에 걸쳐 8∼12개로 된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을 위한 소책자를 3000∼4000권 펴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출국 전 건강검진도 필요하다. 이 활동가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해 일을 하기 전에는 건강검진을 받지만, 막상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돼 건강을 훼손당한 뒤에는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이주노동자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작업환경에 따라 이런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한국 산재보상법에 따라 보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없다"며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올 때 확인하는 것처럼, 나갈 때도 당신의 권리, 치료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연락하는 게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산재예방에 주력하게 바꿔야 =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기본적인 산재 예방책이 제대로 작동하면 사고는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산재예방을 하려면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사업주는 비용을 안 들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산재예방하는 것이 사고 후 처리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하는데, 그 반대다. 심각한 산재 사고가 나더라도 기업이 벌금을 물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 목숨 값이 지나치게 싸다. 이주노동자는 더 싸니까 사업주가 개선할 의지를 안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산재 보상 기준은 임금이니, 더 저렴한 비용을 지급하는 이주노동자를 더 위험한 공정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산재보상이 개인, 사회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보상하는 것으로 끝나니 상황이 더 나아질 리 없다고도 했다.

이 소장은 "건설업은 정부 대형 공사 입찰 자격 심사에 산재 점수가 포함돼 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산재 은폐가 심각하다. 산재에 관한 사항을 넣지 말고, 예방조치를 강화해서 잘하면 기업에 점수를 더 주는 게 효과적이다. 또, 산재 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계속해서 강화해가야 한다. 그래야, 산재 사고에 대비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업장 노동 환경도 문제다. 이 소장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전국 20개 이주인권단체 등이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생활환경 실태조사를 해서 최근 발표했다. 한 네팔 노동자는 '기계보다 빨리 일해도 이 나라 사람들이 빨리빨리 하라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노동 강도가 세고, 노동시간이 길면, 심각한 산재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적발 사업장에 대한 이주노동자 고용 제한, 안전보건 교육 강화 등도 필요하다. 이 소장은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교육을 담당할 전문인력을 길러서 파견 교육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산재 교육 자료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김사강 연구위원은 산재 사고 발생 시 이주노동자에 대한 후속 치료에 미온적인 부분도 문제로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이주노동자가 산재 사고를 당해도 본국으로 보내면 대부분 끝이다. 치료를 받고 싶으면 알아서 오라고 하는데, 오지 못하면 안 해준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산재를 입어 한국에서 치료하는 데 대한 지원이 있다. 또, 재해 보상도 내국인은 재해 보상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일시 수령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소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장기체류 대비한 정책 필요 = 이철승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소장은 고용허가제 문제점을 비판하며, 이민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이주노동자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고용허가제 사업장 이동 제한으로 강제 노동, 노동권 침해 등을 불러온다. 협소한 이동 조건 제한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장 이동 자유 제한으로 고용조건 하향화를 가져왔다. 더 좋은 근로조건이 있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면, 인권침해도 줄고 근로환경도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 전담 근로감독관 신설도 제안했다. 이 소장은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는데 이에 맞게 고용노동지청마다 이주노동자 근로감독관을 둬서 사업장 상시점검 등을 해야 한다. 현행대로 업체 변경 업무를 하는 지역별 고용센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소장은 "2003년 도입한 저숙련 비전문 인력 제도인 고용허가제 틀이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행 순환식 고용허가제도가 아니라 국내 체류 외국 인력을 기능·기술에 따라 수준별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저숙련 3D업종 노동인력 부족 현상에 따라 필요해서 도입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10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 중 일부는 한국에 체류하고자 남기도 하는데, 불법 체류자 증가로 이어진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일터에서 기능을 익힌 숙련 노동자는 독일처럼 노동자, 사업장을 위해 특별 고용될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소장은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고임금 시장으로 온 이주노동자는 저임금 시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고용허가제가 겉으로는 단기 노동시장 정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년이면 장기 체류자다. 20대 후반에 한국으로 와서 40대가 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어, 한국문화에 익숙해졌고, 결혼해서 자식까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더욱 태어난 본국으로 돌아가서 살 수 없다"며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 체류에 대비를 한다면 고용주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경영 이익을 보는 것만으로는 이주노동자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사업장을 옮기지 않게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할 것이다. 이제 고용정책이 이민정책과 맞물려서 가야 한다"며 사회통합정책으로 이주노동자 정책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끝>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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