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역 미술작가 6명, 창동 '우신장'서 전시회
텅 빈 방 활용해 다양한 생각 담은 작품 선보여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골목에 있는 여관 '우신장'은 지난해 9월부터 손님을 받지 않았다. 80년대 후반에 문을 열어 30여 년 동안 불을 켰던 여관은 그 세월을 고스란히 안은 채 불을 껐다. 그런데 지난 12일 많은 이가 우신장을 찾아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허름한 방마다 펼쳐진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었다.

창원 창동예술촌 골목에 있는 우신장.

정진경, 심은영, 김서현, 노순천, 이정희, 여윤경 등 창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우신장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여름부터 낡고 오래된 건물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어수선하고 쓸쓸한 유휴공간을 보며 저마다 작품을 구상했다. 쇠퇴한 마산 구도심을 생각했고 우신장이 집이었던 집 없는 이들의 피곤을 염려했다.

누군가의 일상이 선명했던, 하지만 지금은 기능을 잃은 여관은 예술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정진경 작가가 '남기고 간 흔적…'전을 통해 선보인 작품. 벽에 남은 못자국 등 흔적에 드로잉 작업을 했다.

먼저 정진경 작가와 심은영 작가는 우신장 3층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정 작가의 '남기고 간 흔적…'전. 301호부터 303호까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작가는 우신장에 몸을 뉘었던 이들을 찾았다. 주인장 대신 우신장을 관리했던 운영자 입에서 시대의 아픔과 사회적 문제가 나오고, 여관이 집일 수밖에 없는 거리 사람들의 삶이 작은 방을 맴돈다.

정 작가는 "벽에 핀 곰팡이, 먼지 자국을 따라 그들의 하루를 더듬었다. 주거공간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달방으로 존재했던 여관의 폐업은 이들에게 커다란 상실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심은영 작가 '305306307'. 바느질 연결 작업이 방을 채웠다.

복도 맞은편 심은영 작가의 개인전 '305306307'. 작가를 대표하는 바느질 연결 작업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방문에서부터 방 안 깊숙이 이어지는 실들. 또 벽면에 내걸린 옷가지들이 부재를 지운다. 하지만 여린 살을 보호하고 온기를 주는 옷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한가운데 내걸린 옷걸이 하나가 외로워 보인다.

바로 위층에선 '불 꺼진 우신장'이라는 이름으로 단체전이 열렸다.

김서현 작가의 작품. 파쇄한 종이가 가득하다.

4층이지만 '5' 자를 쓴 여관. 505호는 온통 종이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파쇄한 종이가 먼지처럼 방을 점령했다. 이에 대해 김서현 작가는 "원형을 잃어버린 조각들로 한참이나 비워져 있었던 공간과의 관계를 모색했다"고 말했다.

503호에 펼쳐진 여윤경 작가의 드로잉 작품.

503호에는 여윤경 작가의 드로잉이 펼쳐져 있다. 커다란 식물을 진 인물들이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다. 여기에서만큼은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노순천 작가는 501호에서 평소 작업과 다르게 선과 면이 중심이 아닌 거칠고 형상이 없는 작품을 내보였다. 이는 모두 무엇을 만들고 남은 파편들. 노 작가는 "이렇게 비어 있는 건물이 많은데도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건물이 지어진다. 내 작업도 이런 지점이 있다. 우신장에서 무엇을 새로 만들기보다 남은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502호는 또 다른 우신장이다. 방 한가운데 여관의 모형이 놓여 있다. 이정희 작가는 건물, 유기, 기록, 관심 등 머릿속을 떠다닌 여러 단어를 모아 모형을 제작했다. 창동 내 다른 건물이 그러하듯 아주 반듯하지 않고 예상 외의 공간이 불쑥 튀어나오는 곳을 기록했다.

누군가의 일상이 멈춰버린 우신장. 알 수 없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가 남은 곳에서 예술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전시는 28일까지 금·토·일요일에만 개방(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의 010-8863-9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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