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순 할머니 88세 맞아 아들·딸 뭉쳐 자서전 헌정

"지난 70여 년의 한이 이제 다 풀립니다."

13일 오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1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뜻깊은 생신 잔치가 열렸다. 결혼하고 70여 년 힘든 삶을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 5남매가 준비한 미수(88세) 기념 자서전 헌정식이다.

주인공인 정소순 할머니는 16살에 시집와 시어른 4명을 모시고, 시동생 3명을 건사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고, 훌륭하게 컸다. 하영옥(70·교사 퇴직), 하영숙(67·시인), 하영수(61·여행사 대표), 하영례(58·대구사이버대 교수), 하인수(56·유한대 교수) 5남매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빛으로 살아가고 있다.

13일 오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1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정소순 할머니의 미수 생신을 맞아 자서전 헌정식이 열렸다. 할머니와 5남매 모습. /박종완 기자

자서전 출판은 할머니의 오랜 꿈이었다. 몇 해 전부터 자식들에게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왔다. 5남매는 어머니 꿈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난 4월부터 자서전을 준비해 175쪽 분량 책을 묶었다. 1부에 시집살이와 공장생활, 남편에 대한 회한, 자식들의 성장 등을 담았고, 2부는 자식, 손주들이 전하는 사랑이야기다. 자서전은 딸과 대화형식이다. 막내딸인 하영례 씨가 어머니에게 주제별 질문을 하고, 정 할머니가 답하는 형식이다.

둘째 딸 하영숙 씨는 "어머니께서 진짜 힘들게 가정을 이끄셨다. 아버지께서 가부장적인 남편, 아버지라 정말 힘들게 살아오셨다. 칭찬 한 번 받지 못한 채 70여 년을 살아와 한이 많으신데 이번 자서전 헌정으로 그간의 노여움이 풀렸으면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팔순 잔치 때 가족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남편이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해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본인 자랑만 하는 모습에 속으로 울었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서전을 써주면서 내 감정을 어루만져줬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배고픔을 참으면서 자식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해왔지만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섭섭함이 한으로 남았는데 이제 웃을 일만 남은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다음 생에 시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정 할머니는 "비록 배우지 못해 누군가에게 의지해 내 일기를 남기지만 다음 생에는 시인이 돼 타인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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