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처럼 당대 현실 투영한 영화 만들고파"
인도 유명 배우 출신으로아시아영화의 창 부문 초청
작가 '만토' 열정 담아내 "한국 영화 흥미로워" 언급

꼭 10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하염없이 돌아다니던 남포동 거리, 햇살 좋은 날 해운대 해수욕장에 설치된 산뜻한 피프 빌리지(이후 부산의 영어 철자를 Pusan에서 Busan으로 고치면서 비프 빌리지가 됩니다)에서 바라보던 해수욕장, 하루 4편 영화를 보고 연이어 밤샘 영화까지 보고 난 새벽 어스름 그 해운대 바다. 이제 아득한 향수로 남은 일입니다.

네,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남포동이 아닌 영화의 전당이 있는 해운대 센텀시티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햇살 좋은 시간에는 영화의 전당 광장 파라솔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십니다. 하루 겨우 한두 편의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난 저녁이면 마천루 까마득한 도심을 터벅터벅 걸어 숙소로 돌아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게 있다면 사람들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겠다고 밤낮없이 찾아드는 젊은 친구들이 그렇고, 또 그런 영화를 만든 세계의 영화인들이 그렇습니다. 하여, 여기 지난 8일에서 10일까지 3일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세계의 영화인들을 차례로 소개하려 합니다. 가장 먼저 이번 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된 인도 영화 <만토>(2018)와 난디타 다스 감독을 만나볼까요.

▲ 영화 <만토>의 난디타 다스 감독. /이서후 기자

◇불꽃 같은 작가 사다트 하산 만토

<만토>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연이어 파키스탄이 성립하던 1940년대 격변기에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작가 사다트 하산 만토(1912∼1955)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삶 중에서도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삶의 거점을 옮기던 4년간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그는 항상 논쟁적인 작품을 썼습니다. 매춘에 나서는 여자 아이, 폭력을 휘두르는 포주와 잠이 부족할 정도로 매춘을 강요당하던 여인들이 등장하죠. 그는 자주 외설 논란에 휩싸입니다. 재판도 여섯 번이나 하게 되죠. 영국령 인도에서 세 번, 또 파키스탄에 정착해서도 세 번 음란죄로 기소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교도소에 간 적이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당대 현실을 담은 문학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된 논란에 그의 소설은 점차 출판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업 작가의 길을 묵묵하게 걷습니다. 물론 생활은 피폐해지죠. 그는 점차 술에 의존하며 몸이 망가집니다.

영화 <만토> 포스터

◇배우에서 감독으로 난디타 다스

영화를 만든 이는 난디타 다스(49) 감독입니다. 그는 인도의 유명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가 '여류 배우'나 '여 감독'보다는 그냥 배우, 감독으로 불리길 원했기에 그대로 하려 합니다.) 20년 동안 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죠. 그리고 지난 2008년 그의 첫 장편 영화 <피라큐>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죠. 2002년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벌어진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폭력적인 갈등을 다룬 스릴러입니다. 우리말로는 <살육의 시간>으로 번역됐죠. 그로부터 꼭 10년 만에 영화 <만토>를 들고 부산을 찾은 거죠.

인터뷰를 위해 실제로 만나보니 배우의 아우라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표정이나 몸짓, 조그마한 이목구비까지, 그냥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더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외모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가 누구보다 야무지고 확고한 철학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이 괜한 일이 아니었구나 싶더군요.

영화 <만토>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나의 영화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난디타 감독은 대학생 때 처음 만토의 작품을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만토 100주년 기념식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이에게서 만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가의 본 모습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합니다. 특히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이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네요. 만토가 고민하는 것이 곧 자신의 고민과 같았기에 더욱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요즘 시대에는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바라며 (세상에 맞춰가며)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상'이란 말이 바보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만토가 생각했던 그 (문학적) 이상처럼요. 우리는 사실 종교라든지 인종이라든지 어떤 카테고리 안에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토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 그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유지하며 거울처럼 사회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작가로서 만토의 그런 작업이 제가 하는 영화 작업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가로서의 이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난디타 감독은 영화란 게 여행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각각의 영화는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이라면서요. 우리가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영화를 거칠수록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한국영화를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그럴 정도로 한국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며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다만, 그는 한국의 젊은 감독들의 영화가 흥미롭더라고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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