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머금은 바람에 몸 맡기며 오르는 길…


산길 들머리 마애사는 쏴아쏴 바람이 긁어내리고 있었다. 둘레를 에워싼 장한 소나무들을 훑어내리는 바람이 내는 소리렷다. 햇살은 얼굴을 따갑게 만드는데, 그늘에 들자마자 덮쳐오는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며 서늘하게 깔린다.
뭔가 쏟아져 내리듯이 나무를 흔들며 질러대는 소리, 이를테면 소나무가 우거진 가운데 들어선 너도밤나무 상수리나무 따위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소리를 내고 있다. 손자들 쓰다듬는 손길에 할머니가 짐짓 옷고름까지 풀어헤치고 속살 내맡기듯 허리나 다리 허벅지 심지어는 젖가슴까지 내맡기듯 하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는 길이 가파르다. 마애사 산령각 지나 이리저리 꼬부라지는 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아직 포장은 안됐지만 길은 또 왜 그렇게 넓은지, 산길로는 오솔길이 어울리는데 너무 널러서 더없이 호젓한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능선에 오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시 시원하게 쓸어올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구석구석에 산딸기가 자리잡고 눈길·손길을 한량없이 잡아당긴다. 길 또한 좁다랗게 나 있어서 아기자기한 맛을 더해준다.
산딸기가 길가 양쪽에 벌어져 있다니! 일러도 6월은 돼야 꽃이 지고 알맹이가 자리 잡으리라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너무 늦게 찾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짓뭉개진 열매도 있었고 채 익지 못해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산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정이 바빠서 점심밥을 못 먹고 산에 올랐는데, 산에서 산딸기로 배를 채웠다면 누가 믿겠는가. 능선을 오르기 전에 본 산딸기나무는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했으나,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길섶마다 소담스레 맺힌 산딸기가 발길을 부여잡는다. 손 먼저 앞서 달려나온 허기 덕분에 열매를 따먹는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 봐야 얼마나 배가 부르겠느냐 싶었지만, 지나가면서 무더기마다 하나둘씩 따먹다 보니 어느새 허기가 가시고 말았다.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두고 온 식구들이 생각나서 모자를 벗어들고 따 담기 시작한다. 산딸기라는 게 얼마나 조그만지 모아 본 사람은 안다. 몇 시간을 쏟아 부어도 표시가 잘 안나는 작업인 것이다.
그렇지만 오르내리는 길에 쉬엄쉬엄 따담은 열매가 나중에는 한 되 남짓이나 돼 무거울 정도였으니 이토록 맛있는 산길은 5월 방어산이 아니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480m 고지를 넘고 오르막내리막을 두어 번 지난 다음 오른 방어산(530m) 정상은 장쾌했다. 여태까지 건너온 능선처럼 산마루는 바위로 이뤄져 있다. 왼편 바로 아래로 남해고속도로 남강휴게소가 이어져 있고 그 너머로 남강이 휘영청 꼬부라져 뱀대가리처럼 함안으로 치밀어들고 있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이 바로 맞은 편 북쪽에 우뚝하다는데, 북쪽 아니라 사방이 모두 산으로 첩첩 둘러싸였다.
5분 넘어 정상에서 얼쩡거리다 보니 조금 추운 느낌이 든다. 때로는 바람이 세게 불어 몸이 흔들거리기까지 한다. 둘러싸인 사이 펼쳐진 함안 들이 오른편으로 펼쳐지는데 그 너머 무슨 산인지 바짝 다가앉는 품이 갑작스레 다정해 보인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무리지어 왔다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가볼만한 곳 - 마애삼존석불

방어산에는 마애불이 있다. 이 마애불을 보고 조계종에서 지은 절 이름이 마애사다. 마애사는 약사기도도량이라고 스스로를 선전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마애삼존석불 가운데 본존불이 약병을 들고 서 있는 약사여래부처라는 것이다.
약사라는 게 무엇인가. 인간세계의 병으로 생기는 고통을 씻어주는 부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부처는 다 한 가지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고 할 수도 있다. 팔만 사람에게 부처를 이야기하려면 팔만 언어가 필요한 것과 똑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애사에서 굳이 약사여래불을 팔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아가 영험이 있다면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지 않을까, 이렇게 오만 군데 새겨서 이름을 내놓으면 오히려 ‘약발’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애불은 마애사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파르게 20분 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4m 가량 되는 절벽에다가 선을 파서 새겨 넣었는데 공주대학교 연구진이 와서 이번 주 동안 보존 처리를 하고 있다. 신라 애장왕 2년(801년)에 화강암보다 튼튼한 변성암에다 새긴 것으로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앞으로 빗물 따위가 스며들어 망가지지 않도록 약품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우협시보살 팔꿈치 부근에 정원(貞元)17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신라 말기 분위기가 그렇듯 생동감은 전혀 없이 우울하기까지 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본존불을 기준으로 볼 때 우협시 월광보살의 얼굴과 맵시가 아주 부드럽고 좌협시 일광보살이 아주 씩씩한 것을 보면 완전히 천박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마애불 위쪽 바위에 올라보면 앞뒤로 솔숲이 가득 차오른다. 능선에 오르기 전 잠깐 발품을 쉬고 숨고르기에 알맞다.


△찾아가는 길

진주에서는 2번 국도를 따라 마산쪽으로 가다가 사곡에서 지방도로 접어들어 함안 가야쪽으로 계속 내달리면 된다. 아니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군북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왼쪽으로 꺾어들어 길가에 서 있는 표지판 따라 가면 된다.
마산이나 창원에서는 마산 내서를 거쳐 함안군 가야읍을 지난 다음 군북면으로 죽 내달린다. 군북면 소재지를 지나 진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2km쯤 되는 지점에 박곡마을 표지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낙동마을로 길을 잡으면 왼편에 등산 안내도가 나온다. 아스팔트길은 안내도를 뒤로 하고 계속 산자락을 타고 오른다. 나중에 비포장 도로로 바뀌는 이 길 끝에 마애사가 있는데 양옥까지 뒤섞여 있어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하기야 사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그리 불편해할 것은 없다.
여기서 마애불 있는 쪽으로 길을 잡아도 되고 아니면 절간 옆구리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산길을 골라도 된다. 다만 능선에 닿았을 때 방향을 왼쪽으로 잡아 능선 따라 오르내리며 줄곧 걸으면 된다. 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간지럽게 해 줄 것이다.
대중교통은 가야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북면 방향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9시·정오·오후 5시 20분 세 차례 차편이 있다고 군북면 사무소(055-580-2621)에서는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너무 오랫동안 걸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간다. 따라서 대개는 자가용이나 택시로 마애사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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