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도 관여 못한 역사 편찬 관청
오늘을 기록해 '내일'의 힘 다져야

기록하고 편찬하지 않으면 위정자가 역사를 두려워할까?

조선시대에는 춘추관이란 기관이 있었다. 이 춘추관은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 마련된 관청으로, 춘추관의 사관들은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실록 편찬을 담당한 사관들은 왕의 곁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사초를 작성하고 실록을 편찬하였는데 이는 국왕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춘추관은 현재는 대통령기록관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춘추관이 있어서 국왕을 비롯한 중신들은 그만큼은 역사를 두려워하며 정사에 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이 쌓인 역사를 생각하면, 위정자들은 역사의 평가와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어서 가벼이 정사에 임하지 않을 것이다. 사악하고 부끄러운 일을 한 위정자는 기록을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럴수록, 기록과 역사는 중요하다. 사악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위정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기록한다. 편찬한다. 기록과 편찬이 있어야 역사를 두려워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현재의 중앙정부에는 춘추관에 대응할 기관이 있다. 대통령기록관이 있고, 국책기관, 대학 등이 역사의 편찬 작업을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에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 위주, 왕조사 위주의 역사가 주조를 이루어 지방의 역사가 경시되었는데,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표방하고 공약하는 지금, 지방에는 '춘추관'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다.

살펴보니, 서울을 제외하면 부산시에 2명, 인천시에 2명, 수원시에 2명의 전문인력이 문화관련부서 소속으로 배치되어 시사편찬 등을 담당할 뿐이고 여타의 지역에서는 시사편찬 등의 일이 있을 때 전문인력을 고용했다가 마치면 팀을 해체하는 식으로 너무도 기록과 역사를 경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별한 예는 서울시인데, (서울시도 지방정부의 하나이므로) 서울시에서 2015년 개관한 서울역사편찬원에 15명의 전문인력이 배치되어 역사편찬, 자료수집, 연구, 홍보, 교육을 상시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1949년부터의 시사편찬위의 업무를 연장하고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서울시의 사례는 최근이지만 지방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기록하고 편찬하는 소중한 선례가 될 것이다.

1999년에 제정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해 생산·접수한 기록물과 개인 또는 단체가 생산·취득한 기록정보 자료 중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기록정보 자료 등에 대해 기록물의 생산부터 활용까지의 모든 과정에 걸쳐 진본성, 무결성, 신뢰성 및 이용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리하도록 함이 그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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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기록을 관리, 보관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기본이요 시작이다. 옛날 춘추관의 사관이 생명을 걸고 역사를 기록했듯이, 이제 지방에서도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어제의 역사를 조사하고 편찬하여 내일을 준비하는 작업을 지방정부의 명운을 걸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자고로 개혁과 혁명은 기성화되고 나태해진 중앙을 뒤엎는 지방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기성을 갈아엎는 살아있는 지방의 힘을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통해 다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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