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은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익사했다
가난한 집안 보탬 되려 한국으로 온 24살 장남
안전시설 없이 작업하다 뜨거운 수조 속으로 추락
죽어서야 가족 품으로 "두 번 다시 같은 일 없길"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반툴지역의 한 시골마을 트리하르조. 시내에서 1시간가량 논길, 산길을 차로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22일 오전 응아디노(49), 수마리시(43), 아리 트리스티얀토(19) 씨 가족을 그들 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7월 18일 오후 9시 10분께 부산의 한 열처리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위윗(24)의 가족이다. 위윗은 3.7m 높이 냉각수조 위 발판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평지로 이동하려다 냉각수조 틈에 빠졌다. 고용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냉각수조 수심이 2.5m였고, 수온이 67도였다고 밝혔다. 위윗은 화상을 입은 채 익사했다.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위윗의 부모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반툴지역 트리하르조 마을에 있는 위윗의 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위윗의 아버지 응아디노, 어머니 수마리시는 장남이 숨진 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응아디노 씨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마을 여성 2명이 위윗의 집인지 물으면서 찾아왔다. 여성들은 사고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어머니들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마리시 씨는 "깜짝 놀라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들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나중에는 꼭 답장을 주는 아들인데 답이 없어서 울음이 터졌다"며 눈물을 쏟았다. 함께 부산 공장에서 일한 마을 청년들은 당시 사고를 목격하고 트라우마로 모두 일터를 옮겼다.

위윗은 왜 한국에서 일하게 됐을까. 위윗의 아버지는 소작농, 어머니는 전통 바틱 무늬를 그리는 가내 수공업 일을 했지만 가난했다.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탐섬에 가서 돈을 벌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오는 동네 형을 보고 그도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인도네시아보다 월급을 더 주는 한국에서 일하고자 한국어시험 등을 준비했었다.

위윗(왼쪽)과 어머니 수마리시.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인도네시아 정부는 위윗처럼 많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제조업, 건설업 등 분야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서 일을 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보호 및 배치청(BNP2TKI)은 한국에 있는 자국 노동자 수가 올해 10월 현재 5539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분야별로 제조업 4388명, 어업 1149명, 농업 1명 등이다. 취업자 대다수가 고졸자(3557명)이고, 남성(5437명)이다.

위윗은 2016년 9월부터 2019년 9월까지 3년간 일할 생각이었지만, 사고가 났다. 그는 2년 동안 일하며 남동생 학비를 대고, 부모에게 집 수리 비용, 소 구입비 등을 부쳤다. 내년에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까지 예정돼 있었다.

수마리시 씨는 "아들이 늘 피곤하다고는 했지만, 부모가 걱정할까 봐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줄곧 한 사업장에서 일했는데, 함께 일한 친구가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려고 한 사실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위윗의 부모가 <경남도민일보> 취재진과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숨진 노동자의 부모는 사업장에서 더 철저하게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응아디노 씨는 "우리 아들이 이런 일을 당했지만,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 아들 하나로 충분하다. 이웃에 여전히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공장, 회사가 이주노동자의 건강, 안전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썼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위윗 집을 방문한 마을 이장은 청년들이 일을 찾아 다른 섬,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떠나는 추세라고 했다. 소프완 아딜 쿠르니아완 이장은 "마을에서 점점 농사짓기가 어려워졌다. 일할 곳을 찾아서 마을 청년들이 이곳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위윗이 생활하던 고향집의 방.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위윗이 묻힌 마을 공동묘지에는 아직 비석도 세워지지 않았다. 마을 풍습에 따라 1000일이 지나야 비석을 만든다고 했다. 부모는 공동묘지에 들어서자 예를 갖추고자 신발을 벗고 맨발인 채로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을 어루만지는 부모는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위윗의 부모가 위윗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부산고용노동청은 위윗 사망사고에 대해 사업주가 추락 위험이 있지만 이를 막는 덮개 설치 등 추락 방지 조치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사업주를 검찰에 넘겼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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