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곁을 내주는 것 그게 깊고 진정한 사랑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상대가 누구라도 노력만 하면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일까? 내 경험을 보면, 분명 처음엔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방에게 사랑을 못 느꼈지만, 어느 순간 사랑으로 변한 사람도 있었다. 심리학자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의 이론에 따르면 상황이 나의 감정을 결정하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여유를 가지고 노력하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회비용의 문제로 힘들어한다. 이 사람도 좋은데, 이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봐 불안해한다. 그렇게 놓친 사람만 한 트럭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진짜 운명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만 신(神)께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불평 없이 다 받아들이고 그 사람만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거라고. 만약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래서 집안끼리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더 좋을 것 같다. 사랑에 있어서 선택과 자유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불완전한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감정이 아닌, 선택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40대 후반의 돌싱이신 분을 만났다. 결혼도 해봤고, 자녀도 있으니 재혼에는 미련이 없다고 하셨다. 그분은 양봉장을 하면서 사회봉사를 하신다. 아카시아꿀을 막걸리에 부어주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달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만약 굳이 이성을 만난다면,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제 와서 사랑을 위한 사랑은 웃긴 일이다. 나와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모나 나이 같은 건 따지지 않고 다시 결혼할 수도 있겠지"라고 말씀하셨다.

영화 <파운더>는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의 삶을 보여준다. 50대의 레이 크록은 부인과 밥 먹을 때에도 소금 좀 건네달라는 등 상투적인 말만 나눈다. 부인은 패스트푸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자신과 대화가 잘 통하고, 맥도날드에 관심이 많은 다른 유부녀를 알게 된다. 그는 밤마다 그녀와 몇 시간이나 사업 이야기를 한다. 결국 양쪽 다 이혼하고, 위자료 다 챙겨주고, 그 둘은 어렵게 결혼한다. 이것도 사랑일 것이다. 그때 레이 크록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린 '팀'과 같다고. 에리히 프롬도 같은 말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은 팀의 결성이라고.

내 동생은 제수씨와 연애할 때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 둘은 같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심심해서 일이 잘 안되기에, 같이 일을 하면서 데이트를 한다. 동생은 내가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면 '같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하나의 팀이다. 이 과정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잠깐씩. 진정한 팀은 만났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목표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어쩌면 사랑은 사랑을 의식하지 않을 때, 사랑이 소멸할 때, 사랑이 시작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외모나 다른 조건들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에 플러스 알파가 되는, 그런 쪽으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될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알랭 드 보통은 이성을 볼 때, 몇 가지만 좋으면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내 친구는 우리 나이에는 딴 거 다 필요 없고, 대화만 잘 통해도 좋은 짝이라고 했다. 사실 옆에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일 아닌가?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을 왜 좋아할까?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옆에 있어 주기에 그런 것 아닐까?

나는 요즘 낭만적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지금은 사랑이 아니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기다리다 보면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인지부조화의 힘을 믿고 어느 정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을 들여서 사랑을 하면 그 감정은 더 견고해질 것이다. 어차피 첫눈에 반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현실에 거의 없다(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에 하나 그런 사랑이 있다고 해도, 첫눈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노력 없이 사랑하는 것이 무슨 진정한 사랑일까? 그 사랑에 무슨 깊이가 있을까?

/시민기자 황원식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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