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
물질보다는 윤리·신앙적 가치 중요해

제가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들은 예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천국은 살기 좋은 낙원이고, 지옥은 도저히 살 수 없는 불바다라 생각하지만, 이 예화에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없습니다. 보고, 듣고, 먹고, 잠자는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천국과 지옥이 다른가 하면 산해진미로 차려진 진수성찬을 긴 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데 천국에서는 긴 젓가락으로 서로를 먹여 주니까 천국이고, 지옥에서는 긴 젓가락으로 서로가 자기만 먹으려 하니 그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예화에서 얻은 교훈은 천국과 지옥이 '저기'가 아니라 '여기'이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나' 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입만 열면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물론 현실이 어렵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아우성은 어제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렵다, 죽겠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정말 없어서 외쳤던 이전의 아우성과는 다르게 가진 것들을 지키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아우성으로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욕망의 상승은 앞으로도 내리막 없이 끝없이 치솟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합니까? 남을 주려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이 가지면 편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즐길 수 있는 것 다 즐길 수 있기 때문일 텐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즐거워지려면 누군가 고생해야 하고, 내 짐을 누군가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내 짐은 내가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남이 져야 합니까? 이 세상은 돈으로 남에게 짐을 지우고, 갑질마저도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것은 함께 사는 세상을 포기하고 혼자 즐기는 지옥을 확대하려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좋은 계절에 오늘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가 나 혼자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긴 젓가락으로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긴 젓가락으로 남의 입에 맛있는 것을 넣어 주는 일을 한 번쯤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공명탁.jpg

제가 너무 별나라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죄송하지만, 이것이 윤리와 신앙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종교 대부분이 이미 잘사는 것에 포로가 되었고, 종교지도자들마저도 돈이면 환장을 하고 있으니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할지 캄캄합니다. 하지만 이제 나 스스로라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돈 아닌 것에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나도 내가 없는 돈 바라기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남의 짐을 져 주는 새로운 삶을 열어 갔으면 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갈6:2, 공동번역)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