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의원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폭로
정당성 제쳐두더라도 내용 한심스러워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으면, 니가 바로 그 호구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전당포 '해드리오'의 주인 일식은 노름판에서 돈을 몽땅 잃은 고애순에게 이렇게 한 방 날린다. 드라마에서 이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빵 터졌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호구(虎口)는 '범의 아가리' 즉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나 경우를 가리킨다. 그런데 호구는 비유적으로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수룩한 사람은 이용당하기 쉬워서 범의 아가리에 들어있는 것처럼 매우 위태롭다는 뜻이다.

호구는 대체로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양보 잘하고, 거절을 못 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다. 이기적이거나 계산 빠른 사람에게 당하기를 반복한다.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호구는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호구는 경쟁 환경에서 뒤처지기만 할까? 2009년 미국 애리조나대 포드사코프 교수는 다양한 분야 5만 1235명을 대상으로 조직 내 활동과 개인 성과의 관계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넓게 보면 시간과 지식을 동원해 규칙적으로 동료를 돕는 사람이 더 많이 벌고 더 빨리 승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조직에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뿐만 아니라 언제나 묵묵히 성실하게 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사람은 동료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게 된다. 신망과 존경은 자신이 받는 것보다 많은 것을 주변에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한다. 또한, 전체 이익을 키워 자신도 함께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희생이 자신의 손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한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남들과 차별화된 결과가 자신의 성과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그 조직은 치열한 경쟁에 빠져 경직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받는 것보다 나눠주는 것이 많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계산적인 사람은 빚을 진다는 느낌 때문에 받은 것에 대한 보답 형태로 행동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만 자꾸 이득을 취하는 모양새가 되면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일으킨 '예산정보 유출 사태'로 또다시 국회가 국민을 걱정시키고 있다. 심재철 의원의 말처럼, 국민 세금인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나 심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업무추진비와 회의비 내용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 국민을 호구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업체이든 친구들 계모임이든 상관없이 조직에서 사업비를 집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의 사용 항목과 액수를 보면 적절성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서쌍희.jpg

심재철 의원이 예산정보를 확보한 방법이 정당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현재까지 그가 폭로한 내용은 너무도 한심스럽다. 5선 국회의원에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그가 설마 이렇게 끝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10일 시작되는 2018년도 국정감사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자신이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받는지도 모른 채 폭로 아닌 폭로로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싶다. "니가 바로 호구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