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슬픔 노래하다 더 먼 집으로 떠난 당신
독일서 투병…향년 54세
독자 위해 책 재발간 앞둬
이달 고향서도 추모 행사

진주 출신으로 한국 문단에 묵직한 발걸음을 남긴 허수경 시인이 타계했다. 향년 54세. 오랜 투병의 끝이었다. 부고는 3일 저녁 저 멀리 독일에서 우리나라로 날아들었다.

"진주에서 24년, 서울에서 6년, 그리고 뮌스터에서 25년. 서울살이 할 때 만난 서른의 그녀는 '이 시대 우리의 삶이란 게 죄다 매춘과 같다'며 자조했고, 밤새 청승스럽게 노래 불렀다. 그리고 독일문화원에 다녔고 머잖아 독일로 가버렸다."

그와 절친했던 권영란 전 단디뉴스 대표 회고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허 시인은 서울에 사는 동안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 1988년)와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 1992년)을 발표했다. 어려운 시대를 버텨내는 인간 내면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노래하던 시절이다.

독일로 건너가 꾸준히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4세. /연합뉴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훌쩍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서 그는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지독하고 외로운 공부였다고 한다. 지난 8월 재발간된 그의 산문집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난다, 2018년)에 실린 자기소개에 독일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는 자주 오지 못했다. 지인은 물론 가족들도 그를 만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2년에 한 번씩 한국에 왔어요. 그러던 게 10년에 한 번으로 바뀌더라고요. 아무래도 공부만 하다 보니 생계도 힘들고 해서 자주 못 오게 됐나 봐요."

진주에 사는 시인의 동생 허훈 씨의 말이다. 2011년이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 그리고 고향인 진주를 찾은 해라고 그는 전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본 해이기도 하다.

허 시인은 어렵게 공부해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학자가 되기보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이후 독일에 머물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는 고고학을 통해 얻은 통찰로 오랜 시간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그의 투병 소식이 전해진 건 2년 전이었다. 위암이라고 했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 암이 전이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병세가 깊어지면서 그는 조용히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한 듯하다. 그는 문학전문출판사 난다 대표 김민정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제 글빚 가운데 제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다시 그러모아 빛을 쏘여달라"고 썼다. 그렇게 그의 책들이 착착 재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떠나도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나를 기억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허훈 씨가 밝힌 허 시인의 생각이다.

허 시인의 장례식은 그가 살던 독일 뮌스터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유족으로 지도교수로 만나 결혼한 독일인 남편이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은 당장 장례식에 참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시인의 고향 진주에서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이 10월 중순 이후 그를 조용히 추모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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