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고수하던 먹 대신 돌가루·쪽물 선택
도교육청 갤러리 전시…혁신적 재료 사용 실험적 작품

지난여름 내내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삼베를 입힌 캔버스를 들고, 놓고, 세우고를 반복하며 지독히 더웠던 여름을 났다. 그렇게 더위와 습기를 이겨낸 작품은 탄성을 자아낸다.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그림이었다.

닭과 병아리를 그리는 한국화가로 잘 알려진 김경현 작가가 확 달라졌다.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북카페 갤러리 '지혜의 방'. '갋(결)-자연은'이라는 이름으로 초대전을 열었다. 전시장에는 그림 20여 점이 내걸렸다. 한국화를 그리는 법과 읽는 법이 따로 있으며 먹선과 필선을 중시했던 작가의 붓 대신 흐르고 번진 물질의 형상만이 가득하다.

오로지 자연물로 탄생했다는 그림. 광물성 안료(돌가루), 쪽물, 송진만을 썼다는 그림은 아주 낯설지만 익숙하다.

김경현 작가가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 북카페 갤러리 '지혜의 방'에서 전시 중인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먼저 낯선 이유는 재료 때문이다.

멀리서 볼 땐 유화 같다. 마치 기름이 뒤섞여 마블링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확 달라진다. 마른 흙이다. 갈라짐도 있다. 하지만 가루가 떨어지거나 날리지 않는다. 그대로 고정되어 그림이 됐다.

돌가루는 회화에 쓰이는 재료다. 하지만 비싼 가격 탓에 실용적이지 않다. 광물성 안료를 활용하는 한국 전통 채색법인 진채법이 있지만 오로지 돌가루만으로 색을 내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드물다.

"그림을 그린 지 40년이 됐습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또 연륜을 쌓아온 시간을 작품에 녹여내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다 올봄 돌가루를 회화 재료에 응용하고 싶어하는 개발자를 만났습니다."

운명과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일까. 작가가 줄곧 상상만으로 펼쳤던 그림을 그릴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작가는 몇 달 전부터 광물성 안료와 씨름하며 회화에서 어떻게 쓰이고 활용될 수 있을지 작업을 하며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하지만 좌절도 컸다. 광물성 안료는 마르기 전과 후의 색 변화가 아주 컸다. 또 색이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갈라짐이 심했다. 작가는 고민했다. 끈적끈적한 성분을 지닌 송진을 접착제로 썼던 작가는 송진 가루의 양을 달리하며 광물성 안료를 겹겹이 쌓았다. 그리고 흘리고 세우고 흔들었다. 그랬더니 색의 변화가 덜했다.

김경현 작 '갋(결)-자연은' 일부. 광물성 안료와 쪽물로 완성한 그림이다. /이미지 기자

이렇게 완성한 그림은 고구려 벽화처럼, 용암 동굴 속처럼, 우주에 떠도는 행성처럼 나왔다.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를 삼베, 황마 위에 올렸더니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결과물처럼 만들어냈다.

"먹 작업할 때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하나하나 치밀하게 그리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업은 충만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지난 작품들이 아주 섬세했다면 지금은 즉흥과 찰나가 쌓인 시간의 축적이 중심입니다."

한국화면서 추상화인 '갋-자연은' 연작들은 지혜의 방 전시장에 선 누구라도 작가를 불러세워 궁금증을 풀고 싶은 작품이다.

"몇 년 전부터 회화문화재 보존수복학에 매진하며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랬더니 고구려 벽화 같은 그림을 그리네요. 돌가루와 쪽물로 빚어낸 회화, 궁금하시죠?"

전시는 11일까지. 공휴일 휴관. 문의 055-210-5105.

김경현 작 '갋(결)-자연은' 일부. 광물성 안료와 쪽물로 완성한 그림이다. /이미지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