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바뀌면 지워지는 전임자의 업적
흔적 지우기보다 개선으로 방향 바꿔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뜻인데, 앞뒤가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얘기이다. 2018년, 진주시의 문화정책을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났다. 시장이 바뀐 뒤 문화정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전임 이창희 시장의 문화정책은 모두 '돈'과 결부시켰다. 축제나 행사, 기관도 적자가 나면 가차없이 칼질을 했다. 유등축제를 유료화한 것을 비롯해 운영이 어려웠던 청동기문화박물관을 없애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 무진 애를 썼다. 시립 이성자미술관은 전문학예사와 관장도 없이 운영하면서 무늬만 미술관인 채로 내버려두었다. 국악관현악단과 교향악단은 지휘자도 없이 방치하면서 3년간 공연도 하지 못했다. 압권은 익룡화석전시관이다. 운영비가 걱정돼 건립 당시부터 규모를 줄이려 압력을 넣었고, 결국 체험관도 없는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모라자 인수하지 않겠다면서 갈등을 마다치 않았다.

7월 취임한 조규일 시장은 전임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유등축제는 일찌감치 무료화를 선언한 뒤 절차를 마무리했고, 청동기문화박물관과 이성자미술관은 학예사를 채용했거나 채용예정이다. 국악관현악단과 시립교향악단은 지휘자 공모에 들어갔다. 익룡화석전시관은 시가 인수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수장이 바뀌면 정책이 일부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적'이던 북한이 '동지'로 바뀐 것에 비하면 작은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진주시는 정당 간 정권교체 같은 큰 변화는 없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전·후임 시장이 바통을 주고받았을 뿐이어서 시장 개인의 성향이나 판단에 따라 시의 정책이 크게 좌우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는 진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지사, 시장·군수가 바뀐 뒤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 내지 전임자와 다른 정책을 펴는 것을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임자가 고민했던 사안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분명 그런 정책을 펼친 충분한 이유와 엄청난 고민이 있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간 쌓은 노하우가 무시된다는 점이다. 새 수장은 전임자가 쌓은 업적에 자신의 업적을 올려야 발전이 있는데, 현실은 반대다. '원점 재검토'란 이름을 붙여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다. 전임자의 정책을 척결대상으로 몰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큰 발전 없이 도돌이표만 계속하는 것도 이런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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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임자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후임자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전임자의 정책이라면 아마 그 정책을 정할 때 전임자의 독단이 들어갔거나 여론을 잘 살피지 않은 허점은 있지 않았을까 살펴봐야 한다. 취임 100일을 맞은 새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 후임자에게 이런 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이 점을 명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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