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농협맨 "아직 할 일 남았다"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한창 전화통화 중이었다. 매우 민감한 내용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낯선 이가 옆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통화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자마자, 이러저러한 내용이었다고 먼저 설명해 줬다. 그는 이후 대화에서도 자신에게 굳이 좋을 것 없는 이야기를 꺼리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안용우(62) 양산 웅상농협 조합장이다.

모든 조합원에게 생일축하 전화

양산 웅상농협은 1969년 12월 설립돼 50여 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부산-울산을 연결하는 7번 국도 중간 지점(삼호동 579-1)에 자리하고 있는 준농촌형 조합이다. 본점, 4개 지점, 하나로마트, 경제사업소를 두고 있다. 안용우 조합장은 지난 2009년 12월부터 웅상농협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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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우 양산 웅상농협 조합장. / 남석형 기자

Q. 웅상농협 조합장이 된 이후 어떠한 사업에 역점을 뒀습니까?

"여기 지역 분들은 '오늘 어디 가노'라고 물으면 '부산 간다'라고 합니다. 생활 연고가 부산이며, 울산 베드타운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웅상농협은 중상 정도 규모입니다. 취임 초창기 때 웅상농협 예대(예금대출) 비율이 4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70%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에 예대 비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고, 현재 78% 수준까지 올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Q. 올해 경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요?

"아마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 같습니다. 자금 운용이 잘 된 편입니다. 다만 하나로마트 같은 경우는 적자입니다. 최저 임금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트는 수익 여부에 상관없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지역에 여러 대형마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대형마트는 우리 때문에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 못합니다. 즉, 하나로마트는 존재 자체만으로 대형마트 가격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이죠."

Q. 특별한 방법으로 조합원들과 소통한다고 들었습니다.

"조합원 생일 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케이크도 보내 드립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조합장 목소리를 들려드리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지금껏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처음에는 '그런가보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고마워하며, 간단한 민원을 전달하는 창구로도 활용합니다. 조합원들 70%가 60대 이상입니다. 한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를 받아봤다'며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까지 흘리시더군요. 지금 조합원 수가 1150명가량 되는데, 주로 매일 아침 출근길에 축하 전화를 드립니다. 하루 많게는 10통가량 할 때도 있죠."

Q. 조합원을 위한 또 다른 혜택도 있나요?

"우리 조합원 대다수는 창립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희생하고 봉사만 했습니다. 이제 농협이 보답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매해 영농자재 교환권 10만 원, 창립기념일 10만 원 상당 물품, 명절 선물 등을 드립니다. 우리 조합원은 문화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매해 웅상문화체육센터에서 '조합원 한마음대회'인 문화행사를 개최합니다. 어르신들이 설운도·현철 등 평소 좋아하는 가수들을 직접 보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이들에게는 이전에 없던 경험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예산 문제요? 이익 많이 내서 세금으로 내는 것보다, 이익 적더라도 조합원에게 돌아가게끔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Q. 조합장이 선출직이다 보니,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순수한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기에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이것저것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름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선물 등을 보낼 때 제 이름을 아예 넣지 않습니다."

Q. 조합원 아닌 일반 지역민,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호흡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웅상농협 거래 비율로 보면, 일반 지역민이 80%가량 됩니다. 이분들 없이는 저희 웅상농협도 없는 거죠. 조합원은 주인이니까 혜택을 주는 건 당연하고, 지역민을 위한 사회공헌·봉사활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내 아파트 35곳에 장학금 혹은 발전기금, 그리고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을 꾸준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역주민들에게 웅상농협을 이용해 달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대출 이자가 조금 비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수익은 고스란히 지역사회 발전으로 되돌아간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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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해 열리는 ‘조합원 한마음대회’ 모습. 대부분 60대 이상인 조합원들의 문화행사 갈증을 해소해주는 행사다. / 양산 웅상농협

말단 직원에서 조합장까지

안용우 조합장은 양산 용당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했고, 직장 생활을 하며 울산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20대 초반 농협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 40여 년간, 그것도 대부분 웅상농협에서 열정을 쏟았다.

Q. 학창 시절 때는 어떠한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나요?

"예전부터 제 눈에는 불합리한 부분들이 잘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아보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고요. 그래서 경찰·검찰 분야에 뜻을 뒀습니다. 실제 검찰 수사관 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 20살 때 군대에 갔습니다. 군에서 연대장 당번병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때 행정을 배우게 됐죠. 당시 대령인 연대장이 밑에서 올라오는 모든 서류의 오탈자를 보게 했습니다. 연대장이 '수많은 결재 서류 가운데 어느 것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를 빨리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해 줬습니다. 업무 선·후 판단 중요성을 배운 거죠. 제대 후 1979년 23살 때 농협 시험 소식을 접하고 쳤다가 서기보로 합격하게 된 거고요."

Q. 농협 일이 본인 적성과 잘 맞던가요?

"초창기 농기계·농약 구매 담당 일을 맡았습니다. 농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정열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농협은 마치 군대조직 같았습니다. 모든 일이 조합장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식이었죠.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바뀌는 게 없었습니다. 한번은 조합장이 공제보험 목표에서 벗어났다고 월급으로 메우라는 겁니다. 제가 못 하겠다고 하자 조합장이 바로 재떨이를 던지더군요. 저는 조합장에게 '내가 당신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수리되지 않고 전출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 조합장이 그러더군요. '조합장한테 달려드는 놈은 처음이었다. 네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지, 아주 괜찮은 놈이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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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우 양산 웅상농협 조합장. / 남석형 기자

Q. 그로부터 30여 년 지난 2009년에 직접 조합장 도전에 나섰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당시 웅상농협 조합장이 사퇴하게 됐고, 후임 인물이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상임이사로 있다 보니 얼떨결에 선거에 나가게 됐습니다. 혼자 등록해 경쟁 후보 없이 당선됐습니다. 당시 조직 역시 여전히 조합장만 쳐다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취임 첫날 '하향식 업무 지시는 하지 않겠다, 모든 걸 스스로 해서 올려라'고 공언했습니다. 조합장 2년 차 되던 때, 한 직원이 와서는 '유럽 여행을 보내주겠다, 기다려봐라'고 하더군요. 농협 보험 실적 포상 관련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정말 우리 농협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군요. 제가 시켜서가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힘을 모아 이룬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각종 사업 완성 위해 내년 선거 출마"

안용우 조합장은 지난 2015년 3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에 다시 출마해 경쟁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안 조합장은 이후 평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2016년 직원 해고에서 시작된 각종 고소·고발 건, 그리고 그해 말 직원 9억 원대 횡령 건이다.

Q. 유난히 구설에 자주 올랐습니다.

"직원 문제는 여러 갈래로 파생되면서 법적 다툼을 벌였는데, 대부분 해결되고 한두 개 남아있습니다. 오늘 전화통화도 그것 관련이었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부분까지 걸고 넘어지는 것에 3년 여를 보냈습니다. 횡령 건은 한 직원이 ATM기 돈을 빼돌린 사건인데요, 전 직원이 손실액을 자신들 상여금에서 메우겠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했지만, 직원들 뜻이 확고했습니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일련의 일이 있었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받아들입니다. 제가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이 대뜸 전화해서는 '저한테 부끄러운 일 한 거 없죠'라고 묻더군요. 저는 믿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Q. 내년에 또다시 조합장 선거가 열리는데, 다시 출마하는 건가요?

"네, 나가야죠. 제가 처음 조합장 맡았을 때 생각했던 것들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확실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Q. 조합장 선거에 따라붙는 말이 '진흙탕 싸움'인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벌써 지금도 선거를 앞두고 제 구설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떳떳하고, 이미 검증된 것들을 악용한다면, 되려 역풍을 맞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지난 선거 때 총 지출비용으로 200만 원을 썼습니다. 문자발송, 공보비 외에는 단 1원도 안 썼습니다. 오늘도 직원들에게 '선거 관련해 오해받을 일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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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농협 ‘사랑의 삼계탕 나눔행사’. / 양산 웅상농협

Q. 농협 일 외에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저는 변화를 빨리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새 휴대전화가 나오면 일부러 바꿔서 새 기능을 익힙니다. 예전 한글·엑셀 나왔을 때 원본을 구해 공부하기도 했죠. SNS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농협 행사,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제 심경을 담기도 합니다. 요즘은 색소폰을 열심히 다루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탈출구인 거죠."

Q. 앞으로 인생에서 계획한 또 다른 목표가 있나요?

"'웅상'하면 '웅상농협'을 먼저 떠올리게끔 만드는 게 지금 목표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종종 물어보는데, 저는 정치는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웅상농협 일을 잘 마무리하고 노년은 여행 다니며 지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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