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함께한 한평생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는 '태양카메라'라는 카메라 판매·수리점이 있다. 1952년 마산에서 첫 문을 연 태양카메라는 2대를 이어 67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영만(63) 씨는 1979년 부친에게 매장을 물려받아 39년째 운영 중이다. 장 씨의 인생은 카메라의 역사와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름을 넣고 인화(사진 원판을 인화지 위에 올려놓고 사진이 나타나도록 하는 일), 현상(노출된 필름이나 인화지를 약품으로 처리하여 상이 나타나도록 함) 등을 거쳐야 했던 필름 카메라부터 손가락 한 번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까지. 지역에서 그 변천사를 몸소 겪으며 버텨왔다. 그 세월을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인터뷰를 위해 태양카메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장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태양카메라'라고 적힌 큰 간판부터 유리에 진열돼 있던 카메라들은 누가 봐도 이곳이 카메라 판매·수리점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필름·디지털카메라와 각종 부속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6·25 때 한 공군부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미군 부대에서는 카메라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때 카메라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전쟁이 끝나면서 1952년 현재 마산합포구 중앙동 인근에 사진관을 냈습니다. 당시 가게에 사진 기사가 2명이 있었는데요. 그중 한 명이 군대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곧바로 저를 그 일에 투입시켰죠. 당시에는 하루에 필름이 30~50통씩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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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만 태양카메라 대표. / 박성훈 기자

1979년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대신해 태양카메라를 물려받는다. 당시 장 씨의 나이는 25세였다.

"군대를 전역하고 1년 정도 친척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아지셨어요. 급히 제가 태양카메라를 물려받게 됐죠. 위치를 4번 정도 옮긴 것 같아요. 지금 이 장소에는 2013년도쯤에 왔습니다."

필름 카메라-디지털카메라

39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장 씨는 온라인쇼핑이 등장했던 시점부터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가격과 편리함을 동시에 갖춘 온라인쇼핑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때문에 많은 카메라점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과거에는 물품을 사려면 판매점에 직접 가서 구매를 해야 했습니다. 해당 물품에 대한 정보나 지식도 판매자에게 들어야 했고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런 불편이 사라졌죠. 클릭 한 번이면 구매한 물품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잖아요. 카메라도 마찬가지죠. 온라인쇼핑몰과는 가격 경쟁에서부터 상대가 안 되거든요. 거기다 보통 카메라는 중고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마저도 인터넷에서 직거래를 해버리니까 답이 없어요. 20년 전만 해도 경남에 카메라 판매점이 50곳 정도가 있었는데요. 49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도 힘들어요. 그래도 아직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직장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5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전부 부럽게 생각합니다(웃음)."

과거 카메라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분류됐다. 필름 카메라 같은 경우 값비싼 가격에 인화·현상 등을 거쳐야 했기에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카메라는 70~80년대 초반만 해도 지금처럼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어요. 값비싼 가격에 직장인들은 몇 달을 모아야만 구매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부 필름 카메라였어요. 찍은 사진을 보려면 인화·현상 등 많은 과정이 필요했죠. 그러다 90년대 후반에 디지털카메라가 나왔습니다. 손가락만 누르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고 한 번에 수백 장의 촬영도 가능해졌어요. 거기다 찍은 사진은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잘못 나왔으면 삭제한 후 다시 찍으면 되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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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카메라 매장 내부. 여러 카메라 관련 장비들이 즐비해 있다. / 박성훈 기자

다시 유행하는 아날로그 카메라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필름 카메라가 각광받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을 접한 젊은층에게 느리지만 감성이 있는 아날로그 문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분석할 수 있다. 장 씨도 최근 필름 카메라를 찾는 문의 전화가 잇따른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몇 년 전부터 필름 카메라 판매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2~3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필름을 2통 정도밖에 못 팔았는데 지금은 30통 정도를 판매합니다. 가게를 찾는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더라고요. 우선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 디지털카메라처럼 촬영한 사진이 바로 뜨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한 장 한 장 정성을 들여 찍기 때문에 사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다는 거죠. 요즘은 사진을 찍은 후 며칠 후에 확인할 수 있는 어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진 퀄리티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포토샵이라는 후보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오로지 본인 실력에 달렸죠. 이런 것들이 필름 카메라가 다시 유행하는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경남에 있는 모 대학교 미대 학생들이 전화가 왔습니다. 교과목에 사진학이 들어있는데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15~18대를 원하는데 10대 정도밖에 못 구했습니다. 이처럼 필름 카메라 같은 경우는 물건이 부족합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절대적으로 적죠."

장 씨는 필름 카메라가 기계적인 측면에서도 디지털카메라 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수리비도 저렴하고 고장도 잘 안 납니다. 그리고 필름카메라만의 풍부한 색감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볼 때 디지털카메라는 전자제품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사진작가들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가지고 개인전을 하는 게 추세더라고요. 사실 카메라 판매점 입장에서도 필름 카메라를 팔 때 이윤이 더 많이 남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필름, 현상액, 핀셋 등 꼭 필요한 부속품들이 많죠. 디지털카메라는 삼각대, 메모리카드, 충전기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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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카메라 매장 전경. / 박성훈 기자

사랑방 역할

장 씨는 앞으로 태양카메라가 지역에서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돈 욕심은 크게 사라졌습니다. 태양카메라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크죠.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해요. 고객들을 보면 10~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해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 오면 카메라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요. 1시간 정도는 금방 흐르죠. 앞으로는 단순히 카메라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곳이 아닌 지역에서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매장을 넓힐 수만 있다면 '사진카페'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는 10여 년 정도 더 매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은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카메라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카메라는 매년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고객들보다 먼저 보고 익혀야 합니다. 또 카메라를 다양하게 구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차하면 해외로도 출장을 갈 생각입니다. 나이가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볼 생각입니다."

인터뷰는 끝이 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메라에 대한 장 씨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지금도 종종 사진을 찍으러 가지만 평일에는 매장을 나와야 하고 주말에도 개인적인 일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죠. 가게를 그만두고 나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으로 전시까지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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