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보드와 영화, 좋아하는 것 자유롭게 즐기는 청춘

스케이터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평평한 판 밑에 4개의 바퀴가 달린 간단한 모양, 보기에는 단순한 스케이트보드라는 물건을 가지고 다양하게도 움직인다. 한 발로 밀며 주행을 하거나 스케이트보드 파크에서 곡예 하듯 기술을 펼치고 길거리의 익숙한 시설물을 이용해 보드를 즐기기도 한다. 궁금증만 품고 있었던 스케이터를 만나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이트보드를 즐겨오던 이를 찾다 알게 된 김세중(24) 스케이터. 그는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김해에 사는 세중 씨는 꾸준히 스케이트보드를 타왔고 지역 곳곳에서 스케이트보드 강습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주제로 영상을 꾸준히 만든다. 스케이터의 일상과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스케이트보드는 아직 대중들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했다.

세중 씨가 타는 보드는 '스케이트보드'다. 바퀴 4개 달린 보드는 전부 스케이트보드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케이트보드에도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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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중 스케이터. / 서정인 기자

"크게 스케이트보드라는 틀에서 일반 스케이트보드랑 크루저보드, 롱보드가 있습니다. 스케이트보드는 주행도 할 수 있고 트릭 기술도 됩니다. 크루저보드는 주행용이고, 롱보드는 좀 더 주행에 특화된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롱보드가 평지에서 여성분들이 스텝을 밟으면서 '댄싱'하며 타는 방식으로 유명해요. 외국에서는 고갯길 같은 데서 60km 이상 속도로 빠르게 내려오는 '다운힐'이라는 종목에 많이 사용합니다."

피겨스케이팅과 스피드스케이팅의 차이처럼 기술을 중점으로 탈 거냐 주행을 중점으로 탈 거냐에 따라 스케이트보드 종류를 고르면 된다고 했다.

"일단 기본은 한 발을 보드에 올리고 한 발은 땅을 밀며 출발하고 주행하는 건데요. 계속 타시다 보면 '이걸 어떻게 타고 싶다' 이런 게 생겨요."

실력이야 노력과 시간에 비례할 테니 초보 스케이터는 안전하게 타는 방법을 가장 먼저 몸에 익혀야 할 듯하다.

"(일어선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며) 보드를 탈 때 뻣뻣하게 서서 타면 넘어져도 중심을 잃고 크게 넘어져요. 안정적으로 타려면 무릎을 굽히고 몸의 중심을 최대한 낮춰서 타야 해요. 그러면 넘어지더라도 좀 안전하게 넘어져요."

스케이트보드는 세중 씨가 초등학생 6학년이던 때 느닷없이 나타났다, 동네에서 친구들이 썰매 타듯이 무언가를 타고 노는 것을 보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경사진 곳에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스케이터가 제대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영상을 보았다.

"보드를 타고 묘기를 부리는 영상을 봤어요. 그걸 보고 '아,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강좌를 찾아보면서 혼자 타기 시작했어요."

아찔한 만큼 매력 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종종 다치기도 했다.

"주로 발목을 많이 다치고, 정강이도 많이 다치는데 다치고 들어갈 때마다 부모님이 보드 부순다고 하셨어요.(웃음) 제가 버티고 계속 탔죠. 첫 보드 다음부터는 제가 용돈 모아서 사고 상금 타서 사고 그렇게 했습니다."

1년쯤 타다 보니 혼자서 연습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때 김해 장유에 살았었는데 주말마다 장유에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했어요. 부산에 가면 형님들이 보드를 타고 있거든요. 가서 음료수 드리면서 좀 알려달라고 하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짝꿍을 꼬드겨서 같이 타기 시작했다.(그 짝꿍 실력이 지금 엄청나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둘 같이 타기 시작한 친구들이 세중 씨까지 넷이다.

영화 찍는 스케이터

유년 시절 내내 스케이트보드에 푹 빠져있었던 만큼 꿈도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꿈이 프로 스케이터였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니까 다른 꿈을 찾아보자 생각했어요. 어느 날 무한도전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웃음) 영상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소한 계기로 그려보기 시작한 진로가 영상을 공부하며 구체적으로 변했다. 부모님이 영상 관련 꿈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캠프에 참가해볼 것을 권유했다.

"영상캠프에 갔는데 거기서 영화할 사람, 방송할 사람을 나누라고 하더라고요. 영화나 방송의 차이도 모르던 때였는데 단순히 영화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길래 갔습니다.(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세중 씨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부에 재학 중이다. 지금까지 세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 중 <우리는 스케이터다>는 25분 31초짜리 다큐멘터리다. 영화 중간중간 옛날에 찍어둔 영상을 삽입했다. 20대 스케이터 네 명이 어떻게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생생한 사투리와 함께 전달된다.

"이런 얘기 좀 웃기지만 제가 학교를 좀 열심히 다닙니다.(웃음) 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 때 있는 다큐멘터리 수업이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다큐멘터리 수업이 있었던 건 필요한 수업이라 교수님들이 만든 거라고 생각해서, 1학년 겨울방학 때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다큐멘터리는 감독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찍어야만 영화에 꾸밈이 없고 진실하게 전해지고 뜬구름 잡는 얘기를 안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재를 잘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해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 찍은 영상들을 다 모아놨었는데 활용했죠."

<우리는 스케이터다> 속 세중 씨와 친구들은 평소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노는 모습 그대로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세중 씨의 누나다.

"다큐멘터리 수업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안 없어졌어요. (웃음) 그래서 하나 더 만들었는데… 제가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에 마침 선배님 영화 찍는 것 도와드린다고 제주도에 촬영을 갔었거든요. 제주에 있는 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어요. 아까 말했다시피 제대로 아는 분야가 아니면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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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스케이터. / 서정인 기자

무력감을 느낀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진상규명 요구에 힘을 싣는 일이기도,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했다. 세중 씨 누나도 그런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조카들도 나오고요.(웃음) 세월호 참사로 국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참여하는지 그걸 찍은 겁니다."

작년에 스케이트보드를 주제로 극영화를 한 편 더 찍었다고 했다.

"'드롭인'이라고 스케이드보드 시설물 위에 올라가서 출발해 내려오는 기술이 있어요. 다른 선수들이 하는 걸 보면 그냥 내려오는구나 싶은데, 막상 거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정말 무섭거든요. 그거에 도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스케이터다>, <4월 16일 그리고…>는 단편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올레TV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지금 목표 '내 강습생이 나보다 잘 타는 것'

세중 씨는 스케이트보드와 영상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는 모노파틴 스케이트보드 컴퍼니 소속이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와 '스폰서십'을 맺은 거다.

"모노파틴은 스케이트보드를 만드는 회사인데 거기에서 스케이트보드 장비나 의류를 지원해줍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면 브랜드 홍보도 되고요. 평소 보드 탈 때 착용하기도 하고요. 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어떤 분이 명함 주시면서 연락이 왔었던 것 같아요. 숍에 갔더니 팀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해서 4년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세중 씨는 부산, 김해, 진영에서 스케이트보드 강습을 하고 있다. 만 8세 이상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강습받을 수 있다. 유료·무료 강의를 함께 한다.

유튜브에서 스케이트보드를 검색하면 수많은 동영상이 나온다. 강좌 영상, 스케이트보드 제품 리뷰도 많지만 보드 기술 펼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스케이터들은 영상을 많이 찍어요. 피겨스케이팅처럼 기술을 보이는 운동이다 보니까요. 그런 걸 뽐내는 거죠."

세중 씨도 스케이트보드와 영상을 함께 즐긴다. 세중 씨는 친구들이 스케이트보드 타는 모습을 찍고 편집을 색다르게 하기도 한다. 음악과 후보정으로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도 세중 씨가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방법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겸해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인터뷰할 때도 가지고 온 카메라를 직접 들고 다니며 촬영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서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요. 결혼식 영상도 찍고 SNS 콘텐츠 영상도 찍고. 다양하게 찍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공부와 함께해나가는 중이지만 졸업 후 무얼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있는 중이다.

"스케이트보드와 영상, 두 가지를 같이하면 좋을 것 같긴 한데(웃음). 졸업하면 강사로 일할 생각이고 강사 하면서 스케이트보드 강습생들의 개인 프로필 영상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드 타는 영상을 찍고 그걸 편집해서 5분 내외 영상을 만드는 거죠, 영화로는 일단 졸업 작품 좀 좋은 거 만들고 싶고요."

스물넷 세중 씨, 꿈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바람이 있다.

"제 강습생이 보드를 엄청 잘 타서 '너 누구한테 배웠어' 소리가 나오게 가르치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그때쯤 되면 다른 목표가 또 생길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저보다 잘 타게 만드는 것. 그게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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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보드파크에서 보딩하고 있는 김세중 스케이터. / 김세중

이제 올림픽 정식 종목, 시민 수요에 맞는 환경 필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소수가 즐기는 마니아 문화에서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로. 세중 씨는 그 분위기를 체감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스케이트보드 탄다고 하면 '날아라 슈퍼보드'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 그 얘기가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웃음)"

강습을 받으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강습생 대부분은 아이들이다. 세중 씨 블로그에서 강습 영상을 보면 어른 허리춤까지 오는 아이들이 안전장비를 갖추고 익숙한 폼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자전거나 킥보드처럼 놀이·주행용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나 싶었지만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보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어릴 때 아이들이 자전거를 좀 타다가 다른 거 타고 싶으면 인라인스케이트를 많이 타잖아요 근데 이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 같아요. 모노파틴 매장도 매출이 많이 늘었고요. 최근 들어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스케이트보드 선수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는 스포츠보다는 놀이나, 문화였거든요. 이제는 선수로 활동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어요."

수요가 느는 만큼 경남은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기 쉬운 여건일까.

"현재 경남은 거의 안 좋고요. 부산이 예전에는 잘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부산이 제일 안 좋아요. 스케이트보드파크가 있었는데 다 철거했습니다. 김해에는 하나 있고 창원은 총 세 군데, 양산에서는 스케이터 한 분이 실내 스케이트파크를 오픈했어요. 거기가 제일 활발한 것 같아요. 대회는 매년 열리는 경상권 대회가 있어요. 이번에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되면서 롤러 연맹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매년 국가대표 선발전도 하고 대회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중 씨는 아니, 김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던 스케이터들은 당장 걱정이 있다. 김해에 있는 스케이트보드파크 위치를 이동하는 공사를 한다고 했다. 공사 기간 동안 대체해서 연습할 장소가 부족한 상황이 답답하다.

"지금 스케이트파크가 축구장으로 바뀔 거고 위치를 이동해서 새 스케이트파크를 만드는데 그 기간 동안 보드를 탈 곳이 없어요. 저한테 배우는 아이들도 그렇고 거기서 연습하는 꼬마들이 많아요.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하는 아이도 있는데 장소가 없으면 한동안 훈련을 하지 못해요."

스케이트보드는 한 달 전 막을 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은주원(18) 선수가 스트릿 부문에서 동메달을 따는 값진 성과도 냈다. 2020년에는 올림픽에서도 스케이트보드 경기를 볼 수 있다.

스케이터로서 변화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세중 씨는 장단점이 명확하다고 했다.

"스케이트보드가 스포츠 종목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습니다. 반대 이유는 스케이트보드는 점수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기술에는 난이도가 있고 점수가 매겨지는데요. 쉬운 기술도 정말 멋있게 하는 사람이 있고 어려운 기술도 정말 멋 안 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스포츠가 되어서 점수로 변환됐을 때 쉬운 기술 멋있게 한 것보다 어려운 기술 멋 안 나게 했을 때 점수가 더 높습니다. 그러면 보드를 오래 타온 입장에서 그걸 보면 '저건 아닌데…' 싶은 거죠."

스케이트보드를 더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분명 좋은 변화다.

"찬성하는 입장은, 스케이트보드가 마니아층이 즐기는 문화였는데 이번에 스포츠가 되면서 대중들에게 더 알려지게 되었죠. 그럼 타는 사람이 많아질 거고 잘 타는 사람도 많아지고 인프라가 더 만들어지겠죠. 보드용품 시장도 커지고요.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김세중 스케이터는 12년 동안 스케이트보드를 타왔다. 스케이트보드와 영상은 그에게 취미를 넘어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에 가깝다는 생각을 들었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인 거다. 자유롭지만 성실하게 좋아하는 것을 좇아온 세중 씨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차곡차곡 잘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 20년 후 세중 씨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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