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은신처, 관광명소로 떠오르다
세계 각지서 발길…과거 기독교인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살던 곳
버섯 바위·열기구서 본 일출 장관…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움 가득

조지아 바투미에서 40㎞를 달려 터키 국경에 닿았다. 국경지역에는 터키로 들어가려는 차와 터키에서 나오려는 차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 사이를 겨우 비집고 빠져나가 국경을 통과했다.

지금껏 지나온 길은 대부분 왕복 2차로의 포장 또는 비포장 도로였다. 터키로 들어오니 왕복 4차로의 넓고 좋은 길이 이어졌다. 도로 옆에는 드넓은 흑해가 펼쳐졌다. 길은 좋았지만 날씨가 안 좋았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산과 바다 쪽 하늘에는 해가 쨍쨍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지나가는 도로에만 비가 내렸다. 흠뻑 젖은 우리는 급하게 눈에 보이는 작은 호텔로 뛰어 들어갔다.

호텔의 젊은 사장님은 비에 젖은 우리를 보더니 자신의 호텔 내 레스토랑으로 안내를 했다.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를 내어 주었다. 방이 있느냐는 물음에 사장은 "평소라면 빈 방이 있었을 텐데, 오늘부터 '쿠르반 바이람'이 시작돼 예약이 꽉 찼다. 방이 없다"며 미안해했다.

쿠르반 바이람은 이슬람 달력으로 12월 10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희생절'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내용이 이슬람경전 코란에도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데 천사가 나타나 양을 대신 제물로 바치라고 한 데서 유래한 날이다. 터키사람들은 대개 이 기간에는 고향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의 명절 같은 날이다.

호텔 사장님한테 따뜻한 음료를 대접받고 다시 발길을 돌려 근처 다른 호텔의 방을 어렵게 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서인지 문득 한국에서 먹던 따뜻한 수제비가 생각났다. 근처 마트에 걸어가서 밀가루를 사와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만들었다. 별다른 재료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비 맞고 고생해서인지 아들 지훈이와 눈물 나게 맛있게 먹었다. 이날 먹었던 수제비는 평생 못 잊을 듯하다.

아들과 함께 버섯처럼 생긴 특이한 바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 처음 보는 놀라운 풍경

다음날 아침은 다행히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흑해를 따라 달리다 터키 최고의 관광지인 '카파도키아'로 가기 위해 내륙 쪽으로 들어갔다.

2000m 높이의 산을 두 개 넘으니 카파도키아 지역이 나타났다.

카파도키아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지명이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니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바위산에 구멍을 뚫어 만든 집과 버섯처럼 생긴 특이한 바위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출발할 때쯤 나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어떤 분이 연락을 해 왔다. 터키에서 여행사 '카파도키아스토리'를 운영하는 '황현정' 씨였다. 그때 그녀는 여행하다 꼭 터키에 들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황현정 씨를 만나기 위해 시내 지역인 '괴레메'라는 곳을 찾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았고, 관광 상품들도 다양했다. 우리는 황현정 씨의 소개로 절반은 케이브하우스, 나머지 절반은 스톤하우스인 숙소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케이브하우스는 동굴로 된 집이고, 스톤하우스는 돌을 벽돌처럼 사용해 지은 집이다.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 전경.

◇ 잊을 수 없는 열기구 체험

카파도키아에서 제일 유명한 게 일대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열기구체험이다. 열기구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항상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날은 바람이 잠잠했고 또 황현정 씨가 예약한 덕분에 아주 싼 가격에 열기구를 탈 수 있었다. 새벽 4시 10분이 되자 탑승장으로 가는 미니버스 한 대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 앞으로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조금 가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대충 100대는 돼 보이는 열기구에 커다란 버너를 이용한 따뜻한 바람이 주입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예약한 열기구 앞에서 탑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기구에 뜨거운 바람이 들어가니 열기가 두둥실 떠올랐다. 마침내 탑승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가 떨어졌고 우리는 다른 관광객 10여 명과 함께 열기구에 올라탔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조종사는 열기구 위에 달린 버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우리는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종사의 조종 실력은 정말 뛰어났다. 스칠 듯 말 듯 건물 지붕 위를 지나갔고 닿을 듯 말듯 요리조리 버섯 바위를 피해가며 계곡 사이를 날았다. 열기구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갔다가 바람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열기구에서 바라본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후 만화영화 <스머프>의 배경이 됐다는 스머프 마을과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도 들렀다. 모든 게 신기했지만 특히 땅 속에 만든 동굴이 가장 궁금했다. 동굴들은 과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의 핍박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핍박을 피해 땅속 동굴에 깊이 숨어 살았다. 그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옛날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던 조상들이 지금의 후손들에게 커다란 재산을 남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이상해졌다. 겨우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그 작은 은신처가 지금은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도 알까? 카파도키아는 참 신기한 곳이다. /시민기자 최정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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