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일간지 1, 2면의 하단에 비싼 광고료를 내고 저명인사들의 부고가 잘 실린다. 부고의 말미에는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뒤따른다. 일반적으로는 상주가 기업의 회장이거나 사회의 유명 인사이기 때문에 조문객들의 편리를 위해서 조의금을 선의로 사양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 대부분은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얼마 전 지역지의 조그만 크기의 부고에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놀란 것은, 꼭 성의를 표시하고 싶다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해당 기관에 보내주면 조의금 이상으로 감사하겠다는 글귀 때문이었다.

3년 전 김영란법이 생긴 후 조의금이나 축의금은 규정대로 많이 정착된 것 같으나 현실적으로 규정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다. 봉투 속의 금액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잔디밭의 푯말에도 자꾸 다니다 보면 결국 길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를 오랫동안 여과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결과다.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단속은 상식을 넘어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관여치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상태에서 자각적으로 성숙을 북돋워야 한다.

요즘 '조의금이나 축의금을 사양하겠습니다'라는 것은 부(富)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보다 변화해가는 사회 현실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번거로운 청첩 없이 가까운 일가친척만 모시고 결혼식을 하는가 하면, 상례도 호화 묘지보다 화장이나 수목장·평장 등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이러한 현상을 부유층의 허세·풍조 또는 사회적 압력으로 견제하는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요즘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건전한 사회문화의 확산과 여론의 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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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공직사회 및 기업체에서도 촌지나 음성적인 봉투를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문화가 확산해 생활화되고, 자라나는 2세들도 외국의 젊은이들같이 부모의 상속을 생각하지도 않는 등 허례허식 없이 간략하게 행사를 하는 것도 모두 뜻이 있고 아름다운 사회와 선진국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짐작건대 이런 시대가 사회 곳곳에 벌써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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