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축제서 추락한 김달진문학제
지역 문인 사랑받는 행사로 거듭나야

매년 가을이면 전국 각지에서 시(詩)가, 그리고 (詩人)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지층을 뚫고 나와 축제가 된다. 경남지역의 경우 '열무꽃'의 김달진 선생이 대표적이다. "불빛 아래 비치는 흐릿한 모습/팔십 세의 내 늙은 시력을 안타까워하다가/돋보기 쓰고 가까이 다가가니/처음 보는 그 얼굴의 주름살이여.//중도 아닌 것이, 속인도 아닌 것이/그래도 삼십여 년 불경을 뒤적였네./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중도 아닌 내가, 속인도 아닌 내가."('모월모일(某月某日)' 중에서) 불과 2년 전 이 지면에서 인용했던 작품이다.

출가 당시 선생의 심경도 썼었다. 1933년 늦가을, 당시 스물여섯의 선생은 출가를 결심하고 집을 나서 금강산 유점사로 향했다. "나는 오늘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머리를 깎아버렸다. 구렁이같이 흉스러운 내 자신의 집착성에 대한 증오의 반발이었다. 그리고 장삼을 입고 합장해보았다. 외양의 단정은 내심의 정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겸손과 하심(下心)―얼마나 평안하고 화평한 심경인가?" 선생의 수상집 <산거일기(山居日記)>에 실린 출가 당시의 심경이다. "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며 말년을 시를 통해 부끄러워하며 고개 숙이던 그의 모습을 이즈음 문학제를 이끌고 있는 시인들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제23회 김달진문학제가 지난달 8~9일 창원 진해문화센터와 김달진 생가에서 개최됐다. 축제가 된 현장은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초라했다. 그러니까 10년 전, '김달진문학제 지역축제로 발돋움'이란 타이틀로 중앙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문학제의 위상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다. 당시 김윤식 선생은 "지역별로 여러 문학제가 열리고 있지만 김달진문학제처럼 문인과 지역 주민이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한마음이 돼 치러지는 행사는 드물다"며 "김달진문학제는 명실상부한 지역축제로 발돋움한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다. 우선 당시 방민호 서울대 교수의 이런 말을 떠올려보자.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에만 주목하는 우리 문학출판 풍토가 일정 부분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참신한 신예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데 보다 많은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해 경남지역 최고의 문학축제가 행사를 주관하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 문학제에 참가하는 거의 모든 시인이 어느 특정인에게 한껏 머리나 조아리고 있질 않은가. 김달진(1907~1989)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된 것은 1990년이다. 상금조차 없었던 당시에는 그 명예만으로도 가슴 벅찰 일이었다. 이후 역대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선생의 고고한 시 세계를 따라 배우려는 이들로 엄선됐다.

김륭.jpg

그러나 지금은? 김달진문학관 이성모 관장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 문인들은 물론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마저 문학제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문학제를 아끼는 마음으로 쓴소리라도 하면 시인들 스스로 문단에서 '매장'(?)당할 거란 말까지 떠도는 현실이다. 참 웃기지 않은가. 묘하게도 2년 전 이 지면을 통해 쓴 글은 홍준표 전 지사의 막말을 비꼰 것으로 이렇게 썼다. "'남들이 못하는 참말을 해도 막말이니 독설이니 하며 시비를 거니 이거 참 무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시다면 머리나 깎아보심 어떨는지요?" '김달진문학제' 이대론 안 된다. 혁신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출가 당시 김달진 선생의 심경을 떠올리며 '모월모일(某月某日)'을 다시 읽는 가을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