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맛보기

9월 '온가을달'이 가을 맛을 실컷 보여 주고 갔습니다. 해바라기, 살살이꽃, 메밀꽃 구경도 실컷 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새로운 달은 10월, '열달'입니다. 가을이 이어지질 테지만 찬바람머리에 더 두꺼운 옷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달에도 토박이말 맛보기와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를 비손합니다.

쓸리다

뜻: (살갗이 풀이 센 옷이나 단단하고 거친 것에)맞닿거나 문질러져 벗겨지다.

어제 배곳(학교)에서 일을 하다가 낮밥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암팡진 한 아이를 봤습니다. 바쁜 일이 있는지 뛰듯이 걸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곧바로 튕기듯이 일어나더니 얼른 무릎을 살펴보더군요. 길바닥에 쓸린 무릎에서 피가 살짝 나는데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여느 아이 같았으면 아파서 울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이 가는 아이가 남달라 보였습니다.

올목갖다

뜻: 이것저것 고루고루 다 갖추고 있다.

겪배움(체험학습)을 가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챙기느라 셈틀 앞에 붙어 앉아 땀을 좀 흘렸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난 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저녁때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안 먹던 것을 좀 먹어 보자고 해서 참치를 넣고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양파를 넣고 조림을 했습니다.

저녁때가 늦어서 올목갖게 넣지도 않았는데 맛이 좋았습니다. 좀 많다 싶은 밥을 다 먹었더니 배가 볼록하게 나왔지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날이 바뀔 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답니다.

씀씀이

뜻: 돈이나 몬(물건), 마음 따위를 쓰는 됨새나 만큼(형편이나 정도)=쓰임쓰임=용도

이틀 동안 한 가지 닦음(연수)을 마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있게 배우는 닦음을 이어서 하였습니다.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말씀막대(토킹스틱)'라는 것을 들고 말을 하고 말하는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걸 많이 했습니다. 같은 배곳(학교)에서 지내면서도 한자리에 모여 속마음을 드러내고 들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새롭고 뜻깊은 자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막대라는 것도 여느 때 씀씀이(용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것이나 쓸 수 있어 좋았습니다.

늘 처음 만나거나 새로운 것은 낯설고 어렵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수(방법)였기 때문에 좀 열없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쓸모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용도'라는 말을 많이 쓰고 '씀씀이'는 마음이나 돈을 쓸 때에만 쓰곤 하는데 앞으로 '몬(물건)'을 쓸 때도 씀씀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비슷한 말로 '쓰임쓰임'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

옭다

뜻: (1) 실이나 노끈 따위로 단단히 감다.

저녁에는 시골집에 갔었는데 밤늦게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습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들이붓는 듯이 내리는 비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골짜기 물이 어떻게 불어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바로 건너 들살이(야영)를 하는 사람들이 걱정도 되었습니다.

어찌 잠이 들었다가 빗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이었습니다. 냇물은 제가 미루어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니었지만 엄청 불어나 있었습니다. 물이 적을 때 옭아 썼던 물놀이 마당 울타리가 끊어져 거친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들살이를 하던 사람들도 밤새 짐을 싸서 갔는지 눈에 띄게 줄었더군요.

무섭게 내린 비 때문에 불어난 흙탕물이 냇물을 가득 채우고 흘러가는 것을 보니 어지러웠습니다. 위에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냇가에 쌓이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올여름 물놀이를 하고 간 사람들의 흔적들도 함께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2)올가미를 씌워 감아 매다, (3)꾀를 써서 남을 같이 걸려들게 하다는 뜻도 있으며 (4)사람을 올가미를 씌워 붙잡아 가두다, (5)좋지 않은 수를 써서 돈이나 재산 따위를 긁어 모으다는 뜻으로도 씁니다.

씨억씨억

뜻: 됨됨(성질)이나 짓이 굳세고 힘차며 시원스럽다.

더위가 물러가서 좋다 싶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또 사람들을 여러 가지로 어렵게 합니다. 녀름지이(농사꾼)들이 가뭄 때문에 목이 타는 듯하다고 했는데 이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는데 비 때문에 애써 키운 것들이 물에 잠겨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알맞게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 여름말미(방학)가 끝나고 새로운 배때(학기)가 비롯되었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한 뼘 훌쩍 자라서 온 아이들도 있고 볕도 한나절 안 쬔 것처럼 뽀얀 얼굴로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무 탈 없이 튼튼한 모습으로 와 준 아이들이 고마웠습니다.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새 배때(학기) 배움도 씨억씨억 잘할 거라 믿습니다.

옴살

뜻: 마치 하나의 몸같이 가까운 사이

배곳(학교)을 떠나신 분들의 자리에 새로운 갈침이(교사) 두 분이 새로 오시고 몸이 좋지 않아 쉬는 자리에 또 한 분이 오셨습니다. 새로운 만남과 알음알이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처음이라는 설렘과 떨림이 자리 느낌(분위기)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서로 바라보는 쪽도 비슷하고 뜻이 맞다면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옴살이 되기 어려운 만큼 옴살을 갖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새로운 만남이 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것이 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