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대 17조원 대규모 사업 록히드사와 손잡고 입찰
'초저가'보잉-사브 수주...자국우선주의 정책도 영향
군수시장 높은 벽 실감...민수·헬기시장 확보 과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이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KAI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했던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교체 사업 수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KAI는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과 LAH(소형무장헬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민수 사업 확대 등으로 '버티기'를 해야 하는 힘겨운 처지에 놓였다.

다만, 이번 미국 APT사업 수주 실패를 KAI 책임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는 모양새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워낙 저가에 입찰서를 써내 만약 KAI가 그 가격으로 수주했다면 현재 KAI 기업 규모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적자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28일 자 9면 보도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FA-50을 제작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에 입찰했던 T-50A. /KAI

◇깨진 장밋빛 환상 = 2015년 12월 KAI는 사천 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수출형 훈련기(T-X) 공개 기념식을 열었다. 당시 KAI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록히드마틴과 공동투자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해 경쟁우위를 확보했고, 미 공군이 요구하는 대화면 시현기(LAD·Large Area Display)와 가상훈련(ET·Embedded Training), 공중급유장치를 추가했다고 자랑했다. 또 T-50이 5개 나라에서 운용 중이어서 안전성이 검증됐고, 핵심 요구성능인 지속선회능력을 충족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후 예상되는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 규모는 모두 2000대, 약 100조 원(한국 담당 70조 원)으로 전망했다. 초기 물량 351대(약 17조 원)와 추가 소요·가상 적기·미 해군 등 후속물량 650대(33조 원), 미국 이외 다른 나라 시장 물량 최소 1000대 이상(50조 원)으로 추산했다. KAI는 기본소요 351대만 수출해도 산업 파급 효과는 7조 3000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는 4만 3000명이 될 것으로 홍보했다.

APT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고, '장밋빛 전망'은 KAI 내부는 물론이고 항공업계와 지역사회, 증권가까지 퍼졌다.

◇보잉 상상을 깬 저가 입찰 = 수주 실패를 두고 KAI 관계자는 "록히드마틴과 우리는 단가를 낮출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낮춘 전략적인 가격을 설정해 입찰에 응했다. 하지만, 보잉사가 워낙 저가로 입찰을 하다 보니 탈락했다"고 말했다.

미국 공군은 지난 27일(현지시각) 공보담당관 명의로 낸 알림(뉴스)에서 "미국 공군이 보잉사를 새로운 고등훈련기 공급업체로 선정해 계약했고, 계약 금액은 92억 달러(약 10조 2212억 원)"라고 밝혔다.

이 알림에서 확인된 것처럼 미국 공군이 원래 책정한 전체 사업비는 197억 달러였다. 각종 훈련 설비와 부대 시설 등 기타 비용을 제외한 고등훈련기 도입 자체 비용은 약 160억 달러(약 17조 7760억 원)로 추정됐다. 최저가 낙찰임을 고려해도 이보다 3조∼4조 원 낮으면 수주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보잉-사브 입찰금액은 상상을 초월했다. 92억 달러에 훈련기 351대가 아닌 475대와 120대의 시뮬레이터를 제공한다는 파격 제안이었다. 낙찰가는 미국 공군 책정 가격의 57.5%로 낮아졌고, 훈련기 납품 대수도 35.3% 늘어났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이런 저가 수주는 눈앞의 수조 원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앞으로 100조 원 규모로 확대될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을 확실히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곧 미국 해군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이 있고, 고등훈련기 구매가 예상되는 F-35 계열 전투기 도입·도입 예정 국가만 해도 한국 포함 10여 개국에 이른다.

이와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과 KAI 방산비리 수사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T-50A 부품을 KAI로부터 수입해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최종 조립할 계획이었다. 반면 보잉은 미국 공급업체를 통해 90% 이상 부품을 조달해 미국 내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KAI에 주어진 숙제 = KAI는 이번 사업 수주 실패로 세계 선진 항공시장, 특히 군수시장의 높은 벽과 규모의 경제를 몸소 느껴야 했다. 또한, 이후 고등훈련기 시장이 보잉 BTX-1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T-50 계열의 수출 전략 재검토, KF-X와 LAH 양산 시기까지 몇 년간 매출 공백 최소화 방안 마련이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KAI는 당분간 민수 사업 확대와 헬리콥터 수출 시장 확보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이번 수주 불발은 이후 국외 훈련기 시장에서의 수주 경쟁력 장해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글로벌 훈련기 시장 경쟁 역시 더 치열해질 것임을 암시하며, 미국이 선정한 훈련기 매력도도 배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마린온 사고 이유가 부품 결함으로 나오며 이후 성장동력인 헬리콥터 시장 전망 불확실성은 다소 해소됐지만 훈련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실패는 성장동력이 훈련기에서 헬리콥터로 급히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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