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한 장 한 장 묻어나는 그 열정
청년 타케스 정성껏 만든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꽃의 여신 플로라가 영혼 불어넣어 국화로 재탄생

옛날 그리스 시대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타케스라는 청년이 살았어요. 그 청년은 꽃을 유난히 좋아해서 그의 집 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이 항상 피고 지고했어요.

그런데 타케스는 너무도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꽃들의 색깔이 변하면 꽃에 무슨 병이 있다고 생각하고 세심하게 관찰하여 치료 해주기까지 했어요. 정말로 가슴 아파하는 것은 꽃들이 시들어버리고 꽃송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달아나 버린 것처럼 떨어진 꽃송이를 잡고 훌쩍이기까지 했어요.

"송이야, 꽃송이야, 너의 그 화려한 모습은 어디 가고 이렇게 우중충한 모습이 되어 내 곁을 떠나가느냐?"

정원의 그 수많은 꽃송이들도 말이라도 하듯 타케스를 향하여 시드는 마지막 꽃송이를 벌려 인사라도 하듯 꽃잎을 활짝 벌려 웃었어요. 그 많은 꽃들 중에서도 꽃잎이 톱니처럼 촘촘하게 피어있는 꽃 앞에 서자 그 꽃이 타케스를 눈빛으로 붙잡았어요.

"타케스, 행복했어. 그대의 정원에 피어서 이렇게 떠나가는 우리들은 너무도 행복해. 그대의 사랑을 듬뿍 받고 가는 우리들은 내년에 다시 더 예쁜 모습으로 단장하고 피어날게."

"아, 그래도 너희들을 떠나보내는 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 아프다. 그냥 그대로 아름다운 향기, 고운 꽃잎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거야."

"가야 해. 우리가 가야 하는 이 법칙을 피해갈 수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니야, 나는 꼭 너희들을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거야. 그래서 항상 아름다운 꽃송이, 향긋한 내음으로 너희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할거야."

얼마 안 있어 타케스 정원의 모든 꽃들이 한 송이 한 송이씩 떨어져 버렸어요. 마치 떨어진 꽃들의 아픔을 꼭 물고 정원의 무성한 잎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어요.

▲ 국화 /연합뉴스

타케스는 그런 정원 한가운데에 서서 미칠 듯이 사라진 꽃들의 이름들을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쳤어요. 종일을 그렇게 미친 듯이 정원을 돌아다니며 사라진 꽃들을 그리워했어요.

그러다 타케스는 자기 방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그가 밥도 먹지 않고,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자, 그의 하인이 몇 번이나 문을 열려고 노크를 했지만 타케스는 기척을 보이지 않았어요.

며칠을 그렇게 방에서만 뒹굴던 타케스가 문을 열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는 사라진 꽃송이들을 다시 만난 것처럼 표정이 너무도 밝았어요.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것 같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잎만 무성한 정원을 돌아다니며 꽃들이 만발한 그때의 꽃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렀어요.

타케스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책꽂이에서 꽃에 대한 책을 모두 뽑았어요. 그 꽃의 책들을 펴 놓고 이 꽃 저 꽃 하나 하나 보며 가장 좋은 꽃잎을 가진 꽃을 찾았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 절대로 시들지 않고 영원히 피어서 고운 향기를 내는 그런 꽃을 만들거야."

그는 스케치북을 펴 놓고 가장 아름다운 꽃, 싱싱한 꽃받침, 고운 향기가 나는 꽃을 그렸어요. 꽃잎도 갈래꽃, 통꽃 등 다양한 꽃을 그리며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꽃을 상상했어요.

"내가 만드는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향기가 좋은 꽃이 되는 거야."

그는 스케치북에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 꽃을 꼼꼼하게 그렸어요. 꽃의 색깔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흰 꽃, 노란 꽃, 빨간 꽃 등을 그렸어요.

그가 더 이상의 아름다운 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자 그는 오래간만에 흡족한 웃음을 얼굴에 띠었어요.

타케스는 아주 큰 결심을 하고, 꽃 만드는 일에 착수했어요.

그는 이웃 마을에서 아주 구하기 어려운 그윽한 향기가 나는 샘물을 구했어요. 그러고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금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었어요. 향기라는 샘물과 금반지를 하늘 높이 들고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신이시여, 제가 만드는 이 꽃이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되게 하소서."

타케스는 자기가 스케치북에 그린 꽃 그림을 펴 놓았어요. 그러고는 금반지를 조심스럽게 녹여 아른아른 엉기게, 떨리는 손으로 작은 꽃잎 한 장 한 장을 만들었어요. 그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잊고 꽃잎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붙여 나갔어요.

드디어 꽃송이가 완성되었어요. 그 꽃송이에다가 향기나는 샘물을 조심스럽게 뿌렸어요.

"휴우, 이제 완성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다."

그의 얼굴에 긴 어둠이 걷히고 밝은 태양같은 빛이 잠시 스쳐지나갔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하늘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말이 빛처럼 비추고 있었어요. 꽃의 여신 플로라의 말이었어요.

"타케스, 들으시오. 당신의 꽃에 대한 아름다운 열정은 대단하지만 그것이 의미 없는 생명은 탄생될지라도 꽃의 영혼은 없을 것이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오."

타케스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고, 그저 웅웅거리는 소음으로만 들리는 것 같았어요.

타케스는 자기가 만든 꽃을 부드러운 흙이 있는 정원에 심었어요.

타케스는 마른 나무에서 잎이 돋아나게 할 정도의 뜨거운 기도와 열정으로 그 꽃을 돌보았어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정말로 그 꽃에서 생기가 돋고 꽃들이 생기를 가지고 기지개를 켜듯 부스스 잠을 깨듯 꽃송이가 피어났어요.

타케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했어요.

"와! 나의 황금반지로 만든 꽃이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으로 태어났다."

타케스는 가까운 친척, 마을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을 정원에 초대하여 자랑을 했어요.

"여러분, 이 꽃이 나의 열정, 아니 내 몸을 녹여서 만든 꽃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입니다."

사람들은 타케스가 만든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보며 신기해 했어요.

"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감동이다. 타케스 당신의 생명의 꽃이요."

타케스는 정원에서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가 만든 영원히 지지 않는 꽃송이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흐뭇한 웃음을 꽃송이처럼 피웠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세찬 바람 한 줄기가 타케스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을 어루만지며 서 있는 정원으로 불어왔어요.

타케스가 어루만지던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어요. 타케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어요.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져버렸어요.

그 정원에는 타케스 홀로 남게 되었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게 되었어요.

그때, 하늘에서 가느다란 울림의 소리가 들렸어요. 꽃의 여신 플로라의 목소리였어요.

"타케스, 그대의 꽃에 대한 열정을 갸륵하게 여겨 그대가 만든 그 꽃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겠네. 영혼을 불어 넣어 준다는 것은 꽃은 반드시 시들어버린다는 뜻이네. 그러나 그대가 정성스럽게 만든 꽃, 그 모양대로 꽃을 피우게 하겠소."

타케스는 꿈속이듯 아슴한 그 소리를 듣고 자기 주변을 돌아보았어요. 그 하얀 꽃잎들이 살아나 생기를 띠고 피고 있었어요. 그는 눈시울 붉히며 그 꽃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어요.

이 꽃이 바로 가을에 피는 국화꽃이라고 해요. 흰색 국화의 꽃말은 성실, 진실, 감사이고, 노란색은 실망과 짝사랑이며, 빨간색은 '당신을 사랑해요'라네요.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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