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오기 넘쳐나는 장사문화전시관
죽음 배척·금기시하는 분위기 오버랩

상복공원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이정표를 지났지만 산으로 계속 올라가야 했다. 간 김에 장사문화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다른 나라의 장묘문화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 유럽의 경우가 눈에 들어왔다. 예술품처럼 꾸며 지역의 자랑이 되고 있다는 설명을 보니, 산으로 쫓겨난 봉안당 시설의 처지가 떠올려졌다. 저 안내문을 쓴 사람은 자신의 글이 걸릴 봉안당의 신세를 자조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거리를 빼면 전시관은 형편없었다. 어떤 소설가가 자기 소설에서 상여가 나오는 대목이 있어 상여 정보를 구해야 했지만, 발만 구르다가 마감일 하루 전에 가까스로 구하여 읽고 소설에 참고할 수 있었다. 그 얘기가 생각나 상여에 다가가 보려고 했지만, 먼지가 묻을까 두려웠다. 전시한 후 한 번도 손보지 않았을 낡은 상여를 한복판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배치한 것도 무성의하게 느껴졌지만, 전시관 곳곳의 안내문에 나오는 오자와 오기는 매우 거슬렸다. 무령왕릉은 '무녕왕능', 태종무열왕릉은 '태조무열왕릉', 성덕왕릉의 십이지신상은 '심이지지신상'으로 해놓았다. 누군가가 볼펜으로 고쳐놓았는데도 그걸 그대로 전시하고 있었다.

또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신라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다고 함으로써 마치 그를 통일 군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을 대충 검색하여 위키피디아 같은 데서 긁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김춘추가 통일 대업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라고 하면 모를까 통일 대업을 달성했다고 하면 바르지 않다. 게다가 태종무열왕릉이 "왕릉 가운데 매장된 왕이 명확한 유일한 능"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전 세계 왕릉 중에서인지, 한국 왕릉 중에서인지, 신라 왕릉 중에서인지 기준이 똑똑해야 한다. 신라 왕릉 중에서라고 기준을 정하더라도 태종무열왕릉이 매장된 것이 명확한 유일한 왕릉이라면, 함께 사진으로 전시된 성덕왕릉, 경덕왕릉 등은 그냥 짐작인지 밝혀야 한다.

상복공원은 장묘와 직접 연관된 시설은 괜찮게 지어졌다. 그러나 화장시설 한 귀퉁이 인적 드문 곳에 대충 지어진 전시관은 이 모양이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장묘시설 중 일부가 창피스럽게 지어진 것은 예산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관객이 필서로 고쳐준 것도 그대로 방치한 담당 공무원의 무성의를 먼저 탓할 수 있다. 그러나 상복공원이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면 저런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공무원이 무슨 실수를 해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거나, 지적하더라도 공무원이 고칠 마음도 없게 만드는 도시의 장묘시설은, 주민들에게 내쫓겨 산에 위치해야 하는 신세만큼이나 모두에게서 소외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처지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장묘시설을 배척하거나 터부로 여기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어느 사회이고 죽음과 친화적인 곳은 없으며 그런 곳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특별히 죽음을 외면하고 금기시하는 데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 기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노인병원, 요양시설, 장묘시설 등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 땅값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혐오시설로 원성을 사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토지를 공공재로 규정하는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최소한 부동산이 떼돈을 벌게 하는 사회를 막는다면, 유럽처럼 우리도 봉안시설이 마을 주민의 자랑인 곳으로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봉안시설을 산속에 지어놓아도 주민이라는 사람들의 훼방을 받는 곳에서는 죽음을 주민의 생활공간 속으로 포용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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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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