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의 붓길, 지리산 자락마다 스치다
작은 들꽃부터 산기슭까지
마을 이야기 화폭에 담아

지난봄 지리산 둘레길 걸으며 그린 산수화로 우리를 찾아왔던 이호신 화백이 이번에는 책으로 안부를 전해왔다. 10년 만에 <산청에서 띄우는 그림 편지> 개정판을 출간했다.

이 화백은 지난 3월 경남도립미술관 3층 5전시실·전시홀에서 열린 '지리산 생활산수-이호신'전에서 화첩을 공개했다. 이를 위한 화첩만이었는데도 양이 엄청났다.

<산청에서 띄우는 그림 편지>를 읽으며 그의 화첩을 상상했다. 얼마나 많이 그렸을까.

"오늘의 인연에 화첩을 펴고 붓을 들자 스님은 정취암의 내력을 소상히 들려줍니다."

"저는 성모상을 향해 화첩을 열고 어둠 속에서 붓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이 화백은 아주 끈질기고 성실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글도 썼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두 산청에 관한 것이다.

개정판은 2005년 5월 <월간 산>에 발표한 것과 2008년 <전원생활>에 소개했던 산청 이야기에 2010년부터 2011년까지의 산청 생활을 더했다. '생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10년 전 글과 그림이 서울을 떠나왔던 여행이라면, 이제는 산청 남사마을에 사는 주민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산청도 변했다. 이 화백이 2010년 산청에 온 해, 2013년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준비가 한창이었고 남사예담촌에는 몇 해 전 기산국악당과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이 지어졌다.

이 화백은 매일 거닐던 길과 풍경을 배경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한 권에 산청의 역사와 주민의 삶이 녹아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더욱이 그는 혼자만의 영감과 감상에 젖어 붓을 들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만났고 흡사 취재를 하듯 그곳을 소상히 안 뒤 화첩을 펼쳤다. 아주 섬세하고 구체적인 글은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첩과 한지에 그려낸 생활 산수가 책장을 더디게 넘기게 한다.

성인 키 만한 작품은 실물을 보고 싶게 한다. '대성산 정취암 일출'이 궁금하고 '산천재에서 본 천왕봉'은 책 양쪽에 걸쳐 펼쳐져 있지만 그림보다 작은 책 크기라 안타깝다.

화첩에 그린 '지리산 천왕봉과 법계사'와 '법계사 주지 관해스님'은 그대로 액자에 내걸고 싶고 수묵이 아니라 펜으로 그려낸 그림도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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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신 작 '축제의 밤-산청 한방약초축제'.

이 화백은 지리산을 경외한다. 너른 가슴으로 안아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지리산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을 흠모한다. 2008년 산천재, 덕천서원을 방문한 그는 "진정한 우리 시대에 선비의 길이 무엇인지, 자기답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를 선생의 영혼은 묵시적으로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성긴 붓끝은 선생에 대한 외경으로 자꾸만 떨려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남사예담촌에 화실을 짓고 가장 먼저 붓을 들어 화폭에 담고 싶은 곳은 남명의 유적지 전경이었습니다. (중략)남명의 생애를 순례하여 그렸으니 남명 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널리 선용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화백의 붓길은 산청 곳곳을 찾으며 지리산 자락의 삶과 정신을 그려냈다. 그래서 초판보다 49점이 많아진 개정판이 반갑고 수록된 작품 146점을 허투루 볼 수 없다.

또 때맞춰 개정판으로 나온 이 화백의 <남사예담촌>도 궁금하다. 2010년 서울에서 남사마을로 화실을 옮긴 그가 펴냈던 책이 6년 만에 출간되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가 된 남사예담촌의 활기를 전한다.

당나라 때 문장가 유종원(773~819)은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서야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산청의 아름다운 산수를 알아본 화백이 있어 참 다행이다.

뜨란 펴냄, 328쪽,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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