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은 그동안 불신과 의혹의 대명사로 진보와 보수 간 진영논란의 원인을 제공했던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놀랄만한 진전을 가져왔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육성으로 처음 비핵화 의사를 밝힌 것이 그것이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관련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구폐기할 것임을 확약하는 등 사실상 핵사찰에 준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군사 분야 항목만 해도 그렇다.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골자로 하는 군사합의서는 이름만 다를 뿐 실질적인 불가침 약속이나 마찬가지 의미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구체적이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명시적이어서 흔히 말하는 가식적 자기 명분용으로 평가절하하기는 어렵다.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폭탄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가져온 의외의 성과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샅바 싸움에 어떤 결의로 임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답방을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햇볕 아래로 나서는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모르기는 해도 서울 방문을 통해 북미 관계의 진정성을 과시하겠다는 포석을 깔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적대의 역사를 청산하고 함께 살아가는 미래비전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북미 간의 절충과 타협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결말이 좋으면 좋은 대로 그렇지 못하면 그런대로 적절하게 대응하면 그만이다. 사찰 성격의 검증방식을 언급하고 영변 핵시설까지 영구 폐기할 각오를 내비친 만큼 북한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차제에 정치권도 당리당략에 따라 무조건 반대한다든지 비판에만 열중해서는 국론을 한곳으로 모을 수 없다. 통일을 논하고 민족의 대동단결과 평화를 기원하는 위치에 서서 평양공동선언이 지향하는 바의 대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환영 평가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