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망생과 대화를 나누다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라고 물으니 "좋은 글, 정확한 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언뜻 상투적이고 다소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하는 대답이었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글'이라는 말 안에는 글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망라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탄탄한 논리구조나 정치적·윤리적 올바름, 미적 아름다움, 지적 충만함 같은 것들 말이다. 지망생이 함께 언급한 '정확한 글'도 당연히 좋은 글의 요건일 텐데, 이를 굳이 따로 떼어내 제시한 게 왠지 더 좋았다. 그것은 물론 글이 지닌 통제하기 어려운 섬뜩한 힘 때문이다. 논리가 허접하거나 미적으로 후진 글은 누군가를 실망시킬지언정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정확하거나 왜곡·과장·축소된 글은 경우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다.

'정확한 글'이 쉬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아무리 '명확한 사실관계'만 써도 "의도가 무엇이냐?", "왜 꼭 부정적으로 쓰냐?"는 항의가 들어오기 일쑤인 까닭이다.

주제넘지만 앞서 그 기자 지망생에게 미처 못한 조언이 있어 여기에 담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나만의 독창적인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긴말 필요없이 어떤 분의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상투적인 글쓰기는 소박한 미덕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식민 세력에 동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자신의 삶에 내장된 힘을 새롭게 인식하려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저 상투적인 말 대신 다른 말을 써 넣는다면 당신은 벌써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벌써 예술가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사소한 부탁>에서 읽은 글이다. 노회찬에 이어 황현산까지 나의 판단력과 상상력과 표현력의 원천이었던 분들이 하나둘 사라지니 요즘 살맛을 넘어 글쓸 맛이 안 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