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변에서 출토된 3500년 전 이형곡옥옥
문화 일본에 전파된 명백한 증거

최근 강우방 선생은 '민화 새로 읽기'라는 강연회를 통해서 민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채색분석법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민화 속 문양을 해독하여 고대 동양의 우주론에 바탕을 둔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주창했다.

민화의 복잡한 문양은 새 생명의 싹인 신령스러운 기운, 즉, 영기(靈氣)가 영기문(靈氣文)으로 발현되고, 여기서 제1, 제2, 제3의 영기 싹이 나와서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온갖 고차원의 조형을 창출해 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그는 민화를 한국 회화사의 마지막 금자탑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민화에 담긴 영기문의 구성과 전개원리를 들으면서 문득 나는 가야나 신라·백제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에 매달린 곡옥(曲玉)의 모습이 영기문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10여 년 전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에서 보았던 이형(異形) 곡옥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했다.

필자가 곡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4년 초겨울, 일본 도쿄국립과학박물관에서 '비취, 동양의 보배 특별전시회'를 보면서부터였다. 당시 교육부 재외동포교육기관인 니가타 한국교육원 원장으로 근무하던 나는 니가타현의 이토이가와라는 곳이 유명한 비취옥 산지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전시회장에서 구매한 <비취전-동양의 보배>라는 책에서 '조몬 시대부터 이토이가와는 세계 최고의 옥문화 발상지다', '조선반도에는 5~6세기 고분에서 곡옥이 출토되고 있지만 옥을 가공한 유적은 없다', '조선반도 남부에서만 출토되고 있는 곡옥은 모두 왜의 수출품이다'라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 후, 나는 '과연 고대 한반도에서 출토된 곡옥이 모두 일본문화였을까?'라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귀국 후, 2009년 가을, 우연히 들른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에서 "그럼, 그렇지!"라고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에서 제대로 모양을 갖춘 곡옥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고분(古墳)시대에 만들어졌고 조몬시대 말기(3000~2300년 전)에는 매우 조잡한 형태의 곡옥만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 남강 변, 옥방유적에서는 이미 3500년 전에 관옥, 곡옥, 환옥 등 다양하고 세련된 옥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옥을 가공한 흔적이 뚜렷한 숫돌까지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니 수년 동안 숙제로 간직해온 '일본 옥 문화 한반도 수출설'의 미스터리를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유물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곡옥의 꼬리 등 쪽에 또 하나의 꼬리가 달린 이형(異形) 곡옥'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옥 가공 장인들의 창조적이고 익살스러운 일탈 행위에 미소 지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번 강우방 선생의 강연을 통해서 곡옥에 달린 두 번째 꼬리는 장인들이 장난삼아 남겨 놓은 것이 아니라 새 생명과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염원하는 제2의 영기 싹이었다는 사실을 10년 만에 깨닫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 경남 지역 선인들은 생명 탄생과 대우주의 끊임없는 순환 원리가 깃든 오묘한 영기무늬를 이형 곡옥으로 승화시킨 수준 높은 문명인들이었다.

이제 이런 영기문 개념은 각종 민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134년 만에 귀환했다는 명성황후 부채에서도 영기무늬가 보인다. 부처님 손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불수감'이라고만 불리었던 것이 바로 영기꽃이다. 새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영기꽃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할까? 손에 쥐고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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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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