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2008년 전국 첫 시작
도의회 문턱 못 넘어 실패
규제·통제·교육방식 여전
도교육청 조례제정 재추진
학생들 참여 강화에 주안점

최근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10년 동안 논의된 내용이고, 3번째 되풀이되는 논쟁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지난 2008년 경남에서 처음 시작해 경기도교육청(2010년 제정), 광주시교육청(2011년), 서울시교육청(2012년), 전북도교육청(2013년)에서 성과를 냈다. 5년 공백기 이후 다시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 운동 시즌 2'가 시작됐다. 길잡이가 된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다른 지역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학생인권조례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 현장에 꼭 필요한 이유와 조례안 내용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인권 회복 적당한 시기가 있나?

경남교육연대는 전국에서 처음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시민교육단체가 자비를 들여가며 학생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한 건 학생인권 보장이 전제되지 않고는 학교 정상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을 10년 전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초중등교육법에 '제18조의4(학생의 인권 보장)'가 추가됐지만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령이 없어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그 이유다.

고영남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2009년·2012년·2018년 3번에 걸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수정하는 데 참여했다. 고 교수는 "학생인권조례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학생은 이미 인간의 권리를 갖고 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과 입시 이데올로기에 갇혀 유보되거나 큰 제한을 받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게 인권을 주자는 개념이 아니라 학생의 인간성 회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촛불시민연대가 19일 오후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학교를 위한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박일호 기자

경남교육연대는 2009년 의원 발의를 통한 조례 제정 운동을 전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남지역 운동 도움을 얻은 경기도교육청은 교육감 발의로, 서울교육청은 주민발의로 조례를 제정했다. 고 교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가장 빠른 경기도는 당시 정치적 여건도 형성됐고, 인권운동 지평도 워낙 넓게 퍼져 있어 뜻을 모아내는 게 부러울 정도였다. 문제 의식은 광주·부산지역도 못지 않았지만 집단화하는 데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학생인권조례 경남본부는 도민 3만 7000여 명 서명을 받아 주민 발의로 조례 제정에 다시 나섰지만 경남도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4년 경남에도 진보교육감이 당선했지만 조례 제정을 추진할 만큼 힘을 모으지 못했다. 경남뿐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방어에 급급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운동은 주춤했다.

2017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젠더 문제가 학교에서도 불거지면서 학내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는 학생 창의성과 역량 신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무엇보다 올해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경남도의회를 중심으로 정치적 지형이 바뀌었고, 3·1운동, 4·19 혁명 등 민주화 운동 DNA를 가진 경남에서 시즌 2가 시작됐다.

◇변화 더딘 학생 인권 현주소는

사단법인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전국 200개 중·고등학교 학생생활규정을 조사한 결과를 18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 10개 학교 중 9곳은 교사가 학생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고(182곳·91%), 휴대전화를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게 하거나 등교 후 제출(179곳·89.5%)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머리카락 염색, 화장 등 개성을 제한(176곳·88%)하고 이성교제 등 인간관계를 제한하는 규정(143곳·71.5%)도 여전하다.

김해교육연대 윤남식 정책위원장은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만큼 사회도 학교도 어느 정도 변화는 했다. 하지만 사회 성숙도와 학생 인권감수성과 비례해 학교 총량이 같이 올라가지 않았다. '예전에 비하면 살 만해지지 않았니?'라고 되묻지만 시대 요구가 달라졌고, 여전히 학생은 학생으로만 존재하고 불편한 것들은 그대로다"고 설명했다.

10년 동안 학생인권을 보장한다는 조례는 없었지만 학교 안팎의 운동, 2014년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차별은 개선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정치적 견해를 밝힐 자유는 여전히 닫혀 있는 곳이 학교다.

윤 위원장은 "최근 실태조사 결과를 10년 전과 비교하면 쉴 권리, 건강할 권리, 쾌적할 권리 등 학생들의 교육복지 권리 욕구가 높아진 것이 또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2011년 학생인권조례제정경남본부가 김해시 내외동에서 학생인권조례안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한 모습. / 경남도민일보DB

◇조례는 인권강화를 위한 기초

경남도교육청이 최근 공개한 경남학생인권조례안 내용 중 학생 참여권 강화가 눈길을 끈다.

고 교수는 "3번 만든 조례안 모두 좁은 의미의 인권과 권리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과거에는 자유권과 평등권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학교 공동체를 위한 민주적 참여에 중심을 뒀다. 인권 조례가 인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학교인권조례를 기반으로 한 문제의식을 계기로 학교 교육이 바뀌고 변화를 끌어내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조례는 희미해지길 바란다. 학생인권조례는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출발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에는 없는 성인권 교육(제17조 교직원은 성폭력 피해나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내용은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학생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인권은 학생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교사도 인권이 있다. 고 교수는 "여교사 몰래 촬영은 학생이 교사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누구 인권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 이는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교권 침해가 아니라 여교사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권을 침해받은 것이다. 이러한 일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 없고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해결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인권 존중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벌어지는 찬반 논란이 핵심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회복하는 일에 '시기상조'라는 지적은 '만시지탄'이다.

고 교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교 생활규정이 바뀌면 지난해 '겨울 학생 겉옷 규제'가 사라지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학교 내 인권 강화로 기존에 당연했던 교사들의 반말과 행동들이 문제가 되고 수업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빨리 학교 현장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학교와 행정이 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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