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아시랑, 파수마을 곶감 소재 주민참여 작품 선보여
김해 이루마, 민청학련 사건 겪은 고 김병곤 삶 고스란히
 

최근 연극 두 편을 봤다. 함안 극단 아시랑의 <함안군 파수리>(박현철 작, 손민규 연출)와 김해 극단 이루마의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김세한 작, 정주연 연출)다.

<함안군 파수리>는 함안 파수곶감에 대한 전설을,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는 김해 출신 한 민주운동가의 일대기를 소재로 했다. 연극을 보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설화와 인물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노래와 춤, 연기가 함께하니 더 재미가 있다. 이런 작품이야말로 지역 극단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함안 극단 아시랑 <함안군 파수리> 한 장면. /이서후 기자

◇함안 파수곶감에 얽힌 효자 전설 = <함안군 파수리>는 파수마을에서 곶감 농사를 크게 짓던 임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정 속 할아버지가 수정과를 맛보다 파수 곶감으로 만든 게 아니라며 화를 내면서 영정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그리고 파수 곶감에 얽힌 전설을 들려준다.

"잘 들어라! 이 파수리에 성산 이씨와 남양 홍씨, 그리고 은진 임씨 세 대성(大姓)들이 살고 있었능기라. 어느 날 임씨 문중 큰 어른께서 난치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석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중략) 아들은 치성을 드리고 도시락을 들고 험한 여항산을 헤매면서 좋다는 약초를 다 캐어 병구완을 하였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 기절하고 마는데." (임씨 할아버지 대사 중)

기절한 효자 아들은 산신령을 만나고, 산신령은 벼랑 끝에 열린 열매를 깎아 말린 후 따뜻한 물에 녹여 아버지에게 먹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열매가 감이었다.

아들은 그 열매를 집으로 가지고 와 정성껏 깎아 말린 후 수정과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바치자 벌떡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도 재밌지만, 익히 아는 가락에 가사를 바꿔 만든 음악, 부채춤·꽃 춤·비보이 댄스 등 다양한 몸짓이 함께 어우러져 '아이고, 한판 잘 놀았다~'는 기분이 드는 연극이다. 여기에 파수 마을 주민들, 함안여성불교합창단 등 지역민들이 대거 참여해 의미가 더욱 컸던 무대였다.

김해 출신 민주운동가 김병곤의 생전 모습. /극단 이루마

◇김해 출신 민주운동가 김병곤 = "폭력적인 시대가 싫다. 이 강압적인 날들도 싫다. 사람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람답게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 시대가 너무도 싫다." (병곤 대사 중)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는 김해 출신 민주운동가 고 김병곤(1953~1990)의 일대기를 그렸다. 1973년 서울대에서 일어난 최초 반유신 시위에 참여해서 처음 구속된 후,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4년간 동일방직, 서울의 봄, 민청련, 구로구청 부정선거 등 사건으로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1988년 투옥 중 위암 판정을 받고 가석방됐지만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병곤의 일생을 그린 극단 이루마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 한 장면. /극단 이루마

이번 작품은 지난해 말 출판된 <김병곤 평전>(실천문학사, 김현서, 2017)을 토대로 했다. 연극은 경찰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는 청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청년은 아버지가 경찰로부터 괴물로 불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앞으로 경찰은 물론 어떤 공무원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어머니 장례식장을 찾은 아버지의 서울대 동기로부터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웅으로서 아버지 말이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 이렇게 사형이라는 영광스러운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병곤 대사 중)

이 대사는 1974년 7월 사형선고를 받은 후 한 최후진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김병곤을 민주운동 역사에 각인시킨 말이기도 하다. 연극은 김병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민주화 운동을 하며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일상을 통해 그가 관통해온 고단한, 하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삶을 그려낸다.

"난 괴물의 아들입니다. 그게 자랑스럽습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지른 괴물. 김병곤. 그게 내 아버지입니다. 훔친 자를 훔쳤다고, 때린 자를 때렸다고, 죽인 자를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아버지.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필재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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