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魚비(天高어肥)
기름진 속살 가을에 더 고소하니 어찌 아니 먹을쏘냐
날씨 추워지면 지방 많아져 맛 일품
차진 살 구우면 뼈·껍질까지 입속에서 '바삭'

여름 끝자락에 우연히 횟집 수조 속 살 오른 전어를 봤는데, 최근 다시 보니 더욱 실해졌다. 과장 좀 보태면 사람 손바닥 크기만큼 먹음직스럽게 살이 찼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 있나. 횟집에서 1㎏에 1만 8000원 할 때 회로 한 번 즐겼다.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차오르니 가을이 왔구나 싶었다.

며칠 지나 전어 가격이 조금 올랐다. 안 그래도 짧은 가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구이로 한 번 더 즐기려고 단골 주점에 들렀다. 제철 재료로 안주를 내는 곳인데, 역시나 전어구이를 팔았다. 전어를 그릴에 올리고 직접 불에 쬐어 굽는 터라 다소 시간이 걸렸다.

▲ 전어. / 최환석 기자

기다리는 동안 전어구이와 관련한 속담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꺼냈다.

"'가을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음, 아무래도 가을 전어 굽는 향이 구수하다는 뜻이지 않을까."

"게다가 며느리가 오죽하면 집을 나갔겠나. 그런데도 가을 전어 굽는 냄새가 나서 돌아온다는 말이니,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겠지."

가을 전어가 맛있는 까닭은 지방이 풍부해서다. 눈으로 봐도 살이 차오른 것이 입맛을 자극한다.

가을 전어를 구워 먹을 때는 버릴 게 없다. 전남 여수에서 전해지는 속담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한 되다'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남해안에서 겨울을 지낸 전어는 4~6월께 북상해 강 하구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전어는 연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름을 지내다 가을이면 만 안으로 들어온다. 여름에 충분하게 먹이를 먹고 살을 찌운 까닭에, 가을이면 살이 풍부하고 씹는 맛도 일품이다.

보통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말을 하는데, 도다리는 가을 도다리를 으뜸으로 치기도 한다. 지방이 쌓이는 때는 봄이고, 알을 낳기 전 영양분이 가장 많은 때가 가을이어서다.

산란을 마친 봄 도다리는 횟감으로 쓰기는 알맞지 않아 봄에 나는 쑥과 함께 즐겨 '봄 도다리'지만, '가을 전어'라는 말은 따로 논할 까닭이 없다. 그 자체로 맛있다.

다시 대화로 돌아와서, '가을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속담 유래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시집살이 다시 하더라도 가을 전어는 못 놓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고, 전어가 맛있을 때 즈음 지난봄 농사지은 농작물 걱정에 돌아온다는 해석도 있다.

독특한 해석도 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화장을 하는데 그 냄새가 가을 전어 굽는 냄새와 비슷해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일본에서 흘러들어왔다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어를 구울 때 나는 냄새를 화장할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고 여긴다고.

별개로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해석이야 어찌하든 결국 며느리를 낮잡아 보는 말로 읽힌다.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속담은 자연스레 사장될 법도 한데, 언론 기사 제목에는 아직도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는 가을 전어'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 가을 전어' 식의 표현이 잦다.

이제는 며느리도 제 돈 주고 가을 전어 사먹으면 그만이다.

가을 전어에 얽힌 속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맛있게 구워진 전어가 식탁에 차려졌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속담처럼 머리에 깨가 한 되인 양 고소함이 넘쳤다.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조화를 이뤘다. 간간이 씹히는 굵은 소금이 혓바닥을 자극하자 전어의 고소한 맛이 배가했다.

정신없이 전어 구이를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지방이 많고 뼈와 껍질까지 모조리 먹는 탓에 전어는 가끔 소화기관에 부담을 준다. 전어를 먹고 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땐 소화에 도움이 되는 매실을 곁들이면 좋다. 전어회를 찍어 먹는 된장이나 초장에 매실 진액을 섞어 먹거나, 매실 껍질을 곁들여 먹는 방법이 있다.

곧잘 체하면서도 가을이면 찾게 되는 전어는 흔한 생선이었다. 가격이 저렴해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전어를 회로, 구이로 먹었으니 남은 것은 무침이다. 싱싱한 채소와 함께 버무린 전어를 떠올리니, 더부룩한 배가 낫는 듯하다. 따뜻한 쌀밥과 함께 먹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기록적인 더위에 몹시 지쳤었나 보다. 선선한 날씨에 가을 전어까지 더해지니 이 계절이 영원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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