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하자 있는 인생〉 김태훈 지음
컨트리 음악인에서 시인으로
독설적 노랫말 벗고 평온해져

'김태춘이 마산에 있다고? 뭐? 수양 중이라고? 시집도 냈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 김태춘(본명 김태훈), 우연하게 그의 근황을 들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어느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단다. 어쩐지 그의 인스타그램 사진이 자꾸 시골 풍경이더라니. 결국은 고향으로 왔구나 싶었다.

지난해 9월 홍대 앞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조금 쓸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었다.

"아이고 마, 은자는 창원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긴 합니더. 친구들하고 저녁에 만나가 술도 한 잔 묵고 같이 얘기도 하고 그라고 싶지예."

힘들어 보였다. 유명한 인디가수, 하지만 고집스럽게 욕설과 독설이 섞인 노래를 불러대던 그는 심각하게 밥벌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자세한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 마산 촌구석에서 허위 허식 같은 건 '개나 줘 버리고' 벌거벗은 마음으로 지내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본명 김태훈으로 시집을 냈다. <하자 있는 인생>(방앗간, 2018년 7월). 펴낸 곳인 '방앗간' 주소를 보니 그냥 집에서 찍어낸 책이다.

따로 해석이 필요없는 글들이었다. 무게 잡지 않고, 예쁘게 쓰려 하지 않은 맑은 언어들. 시라고 하면 시고, 누가 '이게 무슨 시냐'고 하면 또 무심하게 '그래 시 아니다' 한마디 던져 버려도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은 그저 김태춘식의 말들이다.

"할배랑 할매랑 살다가/할배 혼자 살다가/어머니 아버지 같이 살다가/인자는 아무도 안사는/바람골에//아무것도 아닌 내가 오서/무슨 귀신맨키로/동네를 서성거린다//마루에 가마 앉아 있으모/산딸기 따가 주던 할매손/라디오 틀어 놓고 쉬던 할배발이/벌건 흙먼지 위로 지나가네//동에 어른들 인자는/허리가 구부러지고/정자나무 옆에 돼지 축사/드론 내 풍기도/골짝 알로 부는 바람/여전하다" - '바람골' 전문

자신의 노래들처럼 욕설도 없고,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부르는 곡조도 없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정적이고, 때로는 사색으로 가득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태춘다운 것'들이 불쑥 솟아오른다. '항상 성질 드론 놈이 이긴다', '마산의 버스 운전수에게 패터슨 같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지 말아라', '십만 원 짜리 술을 마시고' 같은 글이다.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 김태춘(본명 김태훈)이 마산에 살면서 시집을 냈다. /EBS 캡처

일주일 한 번씩 보건소에서 금연 약을 타고 적당한 오후 시간 '정구지(부추)'를 안주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며 그는 가만히, 가만히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오후 네다섯 시쯤/해가 저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에/드문드문 자란 정구지 대충 씻고/막걸리 한 통 들고 와서/마루에 걸터앉아//막걸리 한 모금 삼키고/정구지 한 입 염소처럼 씹는다" - '막걸리' 중에서

"목욕 마치고 나와/그루터기 걸터앉은 노인네들맨키로/빨래들이 줄 위에서 꾸벅꾸벅 존다//해 떨어질 때쯤/우리는 서로에게 안녕을 고하고/내는 그들을 곱게 개가 농에 넣는다//때에 쩔은 내 인생도 인자 좀 빨아서/농에 넣어 삐까 싶다가도/빨래는 아무 때나 하는 기 아인기라/며칠은 더 입어야 긋다 싶어/도로 농을 닫는다" - '빨래' 전문

방앗간, 78쪽, 8000원.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온라인 서점이나 전국 일부 독립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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