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되면 부부 싸움을 하는 친구가 있다. 매번 시댁에서 친정으로 가는 길목, 남해고속도로 갓길에서다. 하루는 차례 음식을 만드느라, 또 하루는 만든 차례 음식으로 손님상을 차려내느라 정신이 없었던 친구가 시댁을 빠져나오는 동시에 정신을 차리면서 시작되는 전쟁이다. '왜, 며느리만 제사음식을 만들어야 하느냐?' 가사노동의 불평등함에 대한 분노로 시작해서 '왜, 먹지도 않을 제사음식을 많이 만드느냐?' 제사 과정에 대한 불만을 넘어 '왜, 내가 만든 음식으로 당신이 제사 때 폼을 잡느냐?'며 남편에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나서야 끝이 나는 전쟁, 이번 추석에도 치를 것이 분명하다.

추석에 꼭 차례를 지내야만 하나?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를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 시끌시끌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차례를 없애자고 하니 조상을 기리지 않는 불효막심한 후손이 되는 것 같아서 찜찜하고, 차례를 지내자고 하니 성 평등과 노동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추석 명절에 지내는 차례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추석 차례는 오곡이 익어 가고 백과가 영글어 가는 가을, 첫 수확의 기쁨을 하늘과 조상님께 보고하는 자리였다. 분명, 조선시대 농경사회에서는 아주 의미 있는 의식이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차례나 제사가 과연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 여름에 나는 수박을 한겨울에 먹을 수 있고, 한겨울에 나는 귤을 한여름에 주스로 갈아먹는 지금, 첫 수확의 기쁨을 초월적 존재에게 고하는 의식이 굳이 필요할까? 명절은 돌아가신 조상 중심의 제사가 아닌 살아있는 후손들의 웃음꽃 잔치가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못 본 가족 친지들이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면 족하다.

명절 차례뿐만 아니라 제사 문화도 현대인의 생활환경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제사 시간이다. 대부분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날 자정, 즉 살아계실 때 가장 이른 시간을 기념해서 지낸다. 옛날 온 친지들이 모여 살던 씨족 마을에서는 가능했던 시간이다.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논밭으로 나가도 불편하지 않은 농경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가족들이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꽤 불편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다음날 직장에 나가야 하는 자식들은 결국 제사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온 가족이 모여 고인과의 추억을 돌아보고 가문의 뿌리를 톺아보는 자리라면 굳이 시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에 중점을 둬야 한다. 자정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저녁에 지내는 것도 좋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온 가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일 수 있는 주말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의미는 살리고 형식은 시대에 맞게 바꿀 때 미풍양속은 계승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제사 지낼 생각 말고, 살아있을 때 생일이나 잘 챙겨라!"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죽으면 그만, 효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당신이 살아있을 때 효도를 강요하신다. 그래서 우리 집은 아버지 제삿날에는 참석을 안 해도 엄마 생신날에는 빠지면 안 된다. 설·추석 명절에는 못 가도 무조건 엄마 생신날에는 가야 한다. 고인이 된 이후, 진수성찬의 제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된장찌개 하나라도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대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엄마와 여행을 가고, 맛있는 걸 먹고,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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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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