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매장 중시한 장례문화 선호했지만
최근엔 수목장 등 자연장 선호현상 뚜렷

1996년 개봉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는 비록 흥행은 시원찮았다 하나 사회사적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품은 영화다. 박 감독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초상난 집'의 풍경을 그린 이 영화는 그의 고향인 합천 '가회'에서 촬영이 이뤄졌으며 박 감독이 직접 맏아들 역으로 출연했다. 문정숙 최성 등의 원로 배우와 김일우 권성덕을 비롯한 연극판 실력파들이 바탕을 깐 위에 가회면의 주민들도 문상객으로 출연했다. 촬영 소품으로 돼지 3마리를 잡고 소주 2000병을 썼다고 하니 동네잔치에 이야기를 입힌 이른바 '팩션'이 구현된 것이다.

같은 해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축제> 또한 전통 장례의 풍경을 재현한 영화다. 굴건제복을 입은 '상주'(안성기 분)의 직업이 소설가인 것은 이 시나리오의 원작자가 '이청준'이기에 설정된 배역이며 <학생부군신위>에서 화자가 감독인 것과 대비를 이룬다. 스토리텔링의 얼개야 다를지라도 장례라는 사실적 '의식'이 구체적으로 재현된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두 편이 제작·개봉된 점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되짚어보니 그 무렵이 우리의 전통 장례의식을 기록해 두어야 할 마지막 시점이었던 듯하다. 관혼상제와 세시풍속의 거대한 흐름의 줄기가 바뀌는 변곡점에 이른 것이다.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백남준의 말처럼 두 예술가는 진전될 세태를 예견하고 묵은 역사의 한 꼭지를 자신의 시선으로 영상에 담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2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그즈음이다. 중풍으로 몇 해 고생하셨지만 거처하던 방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셨다. 마당과 골목에 '채알(차일의 경남 사투리)'을 치고 삼일장을 치렀다. 공원묘지에 모시고 삼우제를 마친 날 가족이 둘러앉았다. 장례비용으로 헐어 쓰고 남은 조의금의 용처를 논의했다. 설왕설래 끝에 "공원묘지의 부모님 산소 아래 열에 16기의 묘 터를 사들이자"는 제안에 합의했다. 훗날 8남매가 순서대로 들어가 나란히 눕자는 것이다. 씨족 공동체의 와해가 가속되는 세태에 마치 떠밀려가는 마지막 세대가 나누는 우애의 다짐처럼.

매년 30여만 평씩이나 늘어나 묘지만도 서울 면적의 1.5배나 된다는 탄식이 넘치던 무렵이었다. 텃밭 딸린 작은 집 한 채 갖는 것이 이 땅에 사는 8할 남진아비의 꿈이어도 땅 한 뙈기 '천신(차지)' 못한 채 숭어뜀을 뛰는 틈에 칠 할이 '산'인 국토는 빠끔한 데가 없이 봉분투성이로 덮였다. 추석 다가와 성묘객을 찍는 방송사의 공중사진을 보면 골골이 무수한 것이 올록볼록한 엠보싱 무늬다. 이건 나라님도 어쩌지 못하는 낭패다. 선대의 묘를 중시하는 전통이 아직 엄연하니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이야말로 금기 중의 금기였다. 그러므로 언감생심 그 뉘도 파묘의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러나 상전벽해란 말을 어찌 물리적 지형의 변화에만 국한 지우랴. 어느 해부터인가 성묘 나서는 식솔이 단출해지더니 명절 아침 제관의 수가 헐빈하게 줄어 간다. 제상의 제물 진설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실랑이도 잠잠해지더니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하던 각 잡힌 성어들이 사라졌다. <학생부군신위>가 크랭크 인 될 당시 20% 남짓하던 화장률은 새 세기를 넘어서면서 꾸준히 상승해 복지부 통계를 뒤져보니 이제 86%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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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웰빙'은 '웰다잉'으로 확장되었다. 죽음 또한 삶의 연장으로존엄을 지키며 품위 있게 떠나자는 소망이 잔잔히 번진다. 수목장 잔디장 화초장 등 자연장이라 일컬어지는 장법이 저항 없이 운위되는 세태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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