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광고 화면에서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 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과연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티 없는 천사처럼 행복했었는데, 성숙해질수록 모진 세풍에 시달려 온갖 고뇌 속에 살아간다. 나에게도 잠깐이나마 한 시간 이상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때가 언제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얼마 전 유엔에서 150여 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북유럽의 핀란드가 1위였고, 우리나라는 57위, 미국이 18위, 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가 상위 그룹이었다. 이 지수를 보면 행복이란 국력이나 국민소득 순이 아닌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어도 주어진 인생의 삶에 순응하며 정신적인 안정을 찾고 누린다면 행복지수가 높아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OECD 국가 중 출생률이 1.05명으로 가장 낮고, 젊은 세대보다 노인 인구가 많은 100세 시대를 맞아 황혼 이혼이 매년 늘어난다는 매스컴을 보고 금석지감을 갖게 했다.

우리 부모들은 평생 대꾸 한마디 할 수 없는 복종을 강요받았고, 무언의 정신적 폭력을 당해온 사람들이 많아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고풍과 어른들의 고지식함 때문에 개인이 향유해야 할 행복권을 찾지 못했다. 요즘 이런 연유로 황혼 이혼이 급증하는 것은 여러 가지 갈등, 성격 차이 등으로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지만, 어떤 면에선 매스컴이 더 부추기는 느낌도 든다.이젠 재산이나 연금도 똑같이 분할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황혼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의견에 망팔을 바라보는 필자도 혹시나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 본다. 인생을 살 만큼 살아 이젠 몸도 마음도 늙어 중풍이나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남편이나 아내 곁을 떠나는 것이 좀 야박하고 몰인정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요즘은 인권이나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시대여서 결혼 당시의 가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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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참고 살아왔는데 오죽하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두고 갈라서야 하는 동정론도 많지만, 그 나이에 능사가 아닐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법이 두부 자르듯이 칼질만 하지 말고 다단계의 숙려기간을 두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거대한 예산과 급조된 정책보다는 효과는 느리지만,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슬로라이프 복지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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