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는 3·15의거 현장] (1) 3·15의거 발원지
1960년 부정선거 반발해
시민 1000여 명 시위 시작
"동판으로 된 표지판뿐
탐방객 위한 공간 필요"

2019년은 마산 삼진 의거 100주년·마산항 개항 120주년·부마민주항쟁 40주년 등 굵직한 기념일이 있는 해이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마산.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6·10민주항쟁을 이끄는 등 그 어느 곳보다 민주화 의지가 높았다. '민주성지 마산'이라고 내세우는 이유다. 여기서 질문. 민주성지에 걸맞은 유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을까? 저항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3·15의거' 현장을 김영만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와 둘러봤다. 그때 그 치열했던 상황도 함께 전달한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지른 건 1958년 민의원 선거 때부터였다. 공정한 선거로 장기 집권하기 어렵다고 보고 집단 투표·사전투표·부정 개표 등 부정선거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국민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걸핏하면 자유당 정권 관제시위에 동원됐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한국전쟁 이후 외국 원조가 있었지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일부는 기득권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됐다. 시민은 매일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김영만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가 3·15의거 발원지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성장률은 둔화되고 물가·세금 부담은 커져갔다. 이 와중에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야 했다. 실업자는 늘어만 갔다. 그래서일까. 1956년 당시 야당의 선거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3·15 부정선거 가장 먼저 거부한 '마산' =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하여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 대업 수행을 위하여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서장은 시키는 대로 하라."(이승만 정권 당시 최인규 내무부장관)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일이었다. 앞서 야당 집회가 예정된 2월 28일 일요일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대구를 포함해 서울·대전·수원·부산 등 전국에서 공명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가장 먼저 선거 무효를 선언한 곳은 마산이었다. 이날 많은 시민이 번호표(투표자 명부 등록번호)를 받지 못해 투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유당을 추종하지 않거나 추종 않을 거라고 판단되면 기회를 박탈한 것이었다.

투표가 시작된 오전 7시.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들이 투표소 입구를 가로막는 자유당 완장부대·정치깡패를 뚫고 들어가 투표함을 찼다. 용지가 쏟아져나왔다. 투표 시작 전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해 투표함에 미리 넣는 '4할 사전투표'(미리 투표함의 40%를 자유당 표로 채워넣는 것)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오전 10시 30분 민주당 마산시당은 47개 투표소 중 3곳에 배치한 참관인을 철수시켰다. 투표권을 빼앗긴 민중은 마산시당사 주위로 몰려 있었다. 마산시당 간부들은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벽보·방송을 통해 폭로했다. 이어 오후 3시 30분 학생·시민 등 1000여 명과 함께 "협잡 선거 물리치자"고 외치며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옛 민주당 마산시당사 기념관으로 조성해야" =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의 길 54. '3·15의거 발원지' 동판이 있는 이곳은 1960년 3월 15일 당시 민주당 마산시당사 앞 수많은 민중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학생 신분으로 3·15의거에 참여했던 김영만 대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부정·불의에 항거하는 DNA를 심은 곳이 여기다. 3·15의거를 시작으로 4·19혁명·부마민주항쟁·6월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이 이어졌다"며 "그 발원지가 제대로 보존 안 되고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 동판을 가져간 일도 있었다. 표지판은 주위 가게를 드나드는 차량들이 정차해 동판을 가리지 못하도록 세웠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창원시에서 마산시당사가 있던 곳의 건물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조성해야 한다. 그러면 탐방객이 편안히 앉아서 설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창원시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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